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지금 한국은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안개 정국이다. 일개 자연인인 최씨가 대통령에게 위임된 다방면의 국정에 깊이 개입하여 직,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개인적인 권력으로 활용하여 사적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이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언론들은 '호가호위'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원래 호가호위(狐假虎威)란 여우와 관련된 고사(故事)인데, '여우(狐)가 호랑이(虎)의 위세(危)를 빌린다(假)'는 뜻으로 실력도 없는 사람이 윗사람의 권세(權勢)를 이용해서 허세(虛勢)와 세도(勢道)를 부린다는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밀림의 왕자인 호랑이는 온갖 짐승들을 다스리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먹으려 하자, 꾀 많은 여우가 말하기를 "너는 감히 나를 잡아먹을 수 없다. 나는 천제(天帝)의 명을 받아 온갖 짐승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인데, 지금 네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이는 천제(天帝)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리라. 만약에 네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앞장 설테니 내 뒤를 따라와 보거라." 여우의 당당한 말에 호랑이는 그만 속고 말았다. 결국 호랑이 앞에서 여우가 당당히 앞서 갔는데, 만나는 짐승들마다 슬금슬금 피하거나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결국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해서 달아난 것인지도 모르고 여우를 두려워해서 달아난 것으로 여겨 여우를 살려줬다는 고사이다.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 가운데에는 완장질이 있었다. 36년의 일제 시대나 공산당이 지배할 때에 완장을 채워주면 마치 모든 사람의 생사여탈권이 자신에게 주어진 양 허세를 부리며 죄 없는 양민들을 무참하게 밀고하며 짓밟았다. 대개는 완장을 차는 자들의 심리는 굉장히 권력 지향적이고 자기애가 강하며,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극히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 이들의 삶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개인과 사회관계를 넘어서 좀 더 확장된 개념의 호가호위가 있다. 이것은 사대주의(事大主義, Flunkyism)현상으로 나타난다. 자국보다 더 강한 나라를 무조건 맹목적으로 복종하고 따르려는 의식이나 주의인데, 그 이면에는 자신의 약한 면을 숨기고 강한 제국의 문화 시민임을 은근하게 앞세움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호가호위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호가호위는 비단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만은 아니다. 종교 권력을 앞세운 호가호위는 무서우리만큼 영혼을 파괴시킨다. 중세 카톨릭의 종교권력을 등에 업은 교황들과 사제들의 호가호위는 1,000년간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암흑기를 낳았다.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부패는 극에 달하였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교황이 된 알렉산더 6세(1492-1503), 율리우스 2세(1503-1513), 레오 10세(1513-1521) 등에 이르러서는 절정에 오른다. 예컨대 알렉산더 6세는 교황에 선출되기 위해 막대한 양의 돈을 뿌려 추기경들의 표를 샀으며, 교황이 된 후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 자기 부하들도 독살하고, 성직을 매매하며, 사형수를 돈을 받고 풀어주고, 근친상간을 눈감아주었으며, 발렌시아의 추기경인 ‘피터 멘도자’에게는 돈을 받고 ‘미소년’을 입양할 수 있게 허락하기도 했다. 심지어 수도원은 동성애가 만연하였고 수녀들은 사제들의 음욕의 대상이 되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이들을 출산하게 되면 대부분 사체로 유기하기도 하였으며, 특별한 경우는 수도원 안에 이들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사제들을 돕는 보조 사제로 키우기도 하였다. 중세문학의 귀족부인의 정부(情夫)는 언제나 사제였을 정도였다.
일례로, 16세기 중용적 종교개혁자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는 사제와 여신도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였다. 이러한 부패는 교황이나 고위 성직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위성직자들도 그런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사제의 혼외관계는 너무나 만연해 있어서 ‘사제의 자녀’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았을 정도였다. 더불어 성직을 돈으로 매매하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신학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 돈으로 성직을 받아 호가호위 하였으며, 이들은 죽은 자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부를 종용하며 온갖 미사를 드려 부를 축척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베드로 성당의 건축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Indulgence)를 판매하면서, 산 자는 물론 죽은 자의 영혼이 천국 가는 직행열차라고 속였으니, 종교권력의 타락은 극에 달하였던 것이다. 이 모두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미화된 지상 교회 권력을 등에 업은 타락한 교황들과 배후의 사제들의 호가호위의 적폐현상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폴리비오스가 말한 대로 우주란 같은 역사를 돌고 도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발전하면서도 동시에 순환성(Historic recurrence)이 존재하는데, 현대 정치는 물론 현대 교회와 목회자들의 성적타락, 물질숭배, 명예추구 현상이 중세 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그 암흑의 역사의 순환성을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직시하며 주의 이름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현대교회와 목회자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johndjc@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