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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모의 아이-생명윤리의 문제

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세계 최초로 한 아빠와 세 엄마의 유전형질을 이어받은 아이가 출산했다. 이 아이는 현재 생후 5개월째의 ‘아브라힘 하산’이다. 아이의 친모는 뇌와 척수 등 중추신경계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희귀병인 ‘리증후군(Leigh syndrome)’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이 질환은 세포의 소기관 중의 하나인 미토콘드리아 DNA에 결함이 있을 때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다. 이 질환으로 인해 하산의 친모는 지난 10년간 아이를 4번씩이나 유산을 해야 했고, 어렵게 얻은 2명의 아이도 생후 8개월, 6세에 각각 사망하는 아픔을 체험했다. 마침내 이 부모들은 이 분야의 전문 연구진에게 의뢰했고, 연구진은 친모의 난자에서 핵을 빼낸 뒤 정상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멕시코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에 친모의 난자 핵을 넣는 방식으로 새로운 난자를 형성했으며, 그렇게 형성된 난자를 아빠의 정자와 체외 수정을 시킨 후, 친모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치환한 인공 수정법을 이용한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나,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운 또 하나의 과학문명의 성과로 기록될 만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하산은 친모와 다른 여성의 난자를 통해 수정되었기에, 유전자조작을 통한 생명윤리의 문제를 평생 안고 사는 존재가 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인공수정을 찬성하는 자들은 이번에 사용한 방식이 배아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난자의 미토콘드리아의 핵만 치환하는 방식으로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생명 윤리의 문제에서 좀 자유로울 것이라는 견해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생명을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유전자를 조작하여 '맞춤형 아이'를 만들어낸다는 관점에서 치명적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세 부모의 유전자를 결합하는 방식의 인공수정을 승인하고 있지 않은 미국에서 이 시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멕시코에서 이루어진 점이 이를 반증한다. 더불어 이 아이가 현재로는 생후5개월이 되었지만 앞으로 잘 자랄지를 더 지켜보아야 한다고 연구진들도 말하고 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유전자센터 베르트 스메이츠 교수는 “아이의 몸속에서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미토콘드리아 수가 늘어나지 않는지 꾸준히 살펴본 뒤 판단할 일”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됨을 형성하는 가족 윤리의 문제이며,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기술로 조작된 생명의 문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연 나의 부모는 누구인가? 나는 창조된 인간인가? 인간 기술로 만들어진 인간인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하나님의 창조된 인간관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여하튼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들어지는 실험관 아이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명 윤리의 문제를 내포해왔다. 앞으로 이 문제는 치유라는 명분으로 더욱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인간 치유와 생명 창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명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죄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의 치유문제는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숭고한 인류문명의 책임의 한계를 넘어서서 유전자를 조작하여 또 다른 생명으로 만들어 내는 문제는 원형이 아닌 변형으로 하나님의 생명 창조의 권위에 도전하는 심각한 바벨 문명이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언약 하에서 인간에게 명한 정상적 출산행위를 통한 생명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대행하는 인간의 숭고한 사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 언약 하에서 출생하는 아이들은 하나님의 신비한 선물임과 동시에 인간이 조작할 수 없는 신비한 타자(他者)이다.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 출발한 배아 시험과 선택, 또한 생식 복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실험관 수정 등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물품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 생명윤리학자 길버트 밀랜더(Gilbert Meilander)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됨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됨의 신비가 자녀들의 삶에서 펼쳐지게 하기를 대단히 꺼린다. 우리는 인간됨과 자손이 대대로 이어진다는 신비 앞에서 겸손의 미덕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후대의 자녀들이 우리가 틀에 넣어 만들어 내는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한 조작된 생명일 뿐이다. 인간 생명은 하나님의 존재의 산물이지 인간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기독교 윤리와 정치 신학자인 올리버 오도노반(Oliver O’Donovan)의 "낳았는가? 만들었는가?"(Begotten or Made?)라는 질문을 되묻고 싶다. 이 질문은 현대문명에 끊임없이 던져져야 할 질문이며 더불어 성경적으로 끊임없이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johndjc@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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