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대부분 “요즘 너무 바빠”라고 답한다. “여유롭다”라고 말하면 왠지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지금도 세상 문화는 “서두르면 효율성이 높아진다. 서두르면 생산성이 향상된다. 서두르는 것은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증거다”라는 말로 우리를 재촉한다.
교회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느라 과로하는 것을 훈장처럼 여기며, 단시간에 해낸 일의 양으로 믿음의 크기를 측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두르면 하나님의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우리가 서두른다 해도 일을 ‘더 많이’ 하기는커녕,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망쳐버리는 때가 많다. 아브라함을 보라.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기라도 하실까 봐, 하나님을 돕는답시고 하갈과 동침해 아들을 얻었다. 결국 그의 조급한 선택은 재앙을 낳고 말았다. 서둘렀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지연시킨 것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도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번제를 올리는 바람에 결국 왕위를 잃었다.
이런 사례들은 성경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잠19:2)라는 성경 말씀처럼, 서두르다 보면 하나님의 길을 지나칠 위험이 크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일이 있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도 있는데 조급하게 구는 바람에 흘려버리고 만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앞질러가려고 서두를수록 우리 삶의 멍에는 점점 더 무거워질 뿐이다. 느긋해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이 이끄시는 길로 갈 수 있다.
앨런 패들링(Alan Fadling) 목사는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에 있는 리더십연구소의 이사이며, 영성과 리더십 훈련 과정인 ‘여로’(The Journey)의 책임자다. 그는 1983년부터 2000년까지 지역교회를 섬기며 수많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멘토링을 했고, 그들 중 상당수를 탁월한 리더로 성장시켰다. 지금은 풀러신학교, 탈봇신학교, 호프국제대학교에서 영성 훈련법을 가르치며, 새들백교회를 비롯한 지역교회와 IVF, 하프타임연구소, 오픈도어선교회 등의 사역 기관에서 강연과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패들링 목사는 느긋하신 예수를 본받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은혜의 속도를 따르는 제자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Unhurried Living: Rest Deeper. Live Fuller. Lead Better).
예수는 정말 느긋하셨을까? 성경에 예수께서 서두르셨다는 증거는 없다. 반면 제자들을 실망시킬 정도로 느긋하게 행동하셨다는 증거는 많다. 삼십 년을 기다리신 끝에 시작하신 첫 사역은 광야에서 사십 일을 지내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지금 당장 정체를 드러내고 필요한 것을 취하라는 마귀의 유혹을 느긋한 자세로 이겨내신 예수는, 이후에도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으셨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라는 형제들의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으셨고, 병든 자를 고치러 갈 때도 서두르지 않으셨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떠나 기도하러 가셨다. 수만 명의 신도들을 끌어 모아 한순간에 대형교회를 세우지 않으시고, 오랜 시간을 들여 열두 명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다.
속도를 강조하는 세상의 가치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그렇지만 예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을 하셨고, 빛나는 삶을 사셨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어 넉넉한 삶을 살아가려면 그분의 느긋함을 본받아야 한다. 느긋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예수는 이 선물을 그 누구보다 풍성하게 누리셨다. 어떻게 하면 예수처럼 느긋해질 수 있을까? 예수는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셨다’. 사역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조차 경건한 ‘이탈’을 규칙적으로 실천하셨다.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과의 만남에 두신 것이다.
실제적인 영성 훈련법으로, “EPC(Extended Personal Communion with God)”를 소개한다. EPC는 말 그대로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넉넉한 시간’이다. 분주하지 않게 느긋하게 혼자서 시간을 가지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그분의 음성을 이전보다 또렷이 듣게 될 것이다.
예수처럼 느긋해지려면 ‘안식’에 대한 왜곡된 개념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지치면 휴식한다. 하지만 성경의 원칙은 다르다. 최고의 일은 ‘안식’에서 시작되며, 마지막에 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쉬고 나서 일을 해야 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안식일을 지켜야 했다. 그는 노동이 아니라 안식으로 인생을 시작했다.
세상은 안식을 시간 낭비로 보지만, 안식은 고달픈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해독제이자 창조의 밑감이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을 신뢰해야 일손을 멈출 수 있기에, 안식은 또한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훗날’에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안식해야 하며, 안식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목회 현장에 적용해보자.
목회자나 리더는 분명 긴급한 일은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를 벗어나야 하는 롯이나 자기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오라고 재촉하는 요셉의 모습은 분명 시급한 일에 대해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만사를 제쳐놓고 대처해야 할 긴급한 일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그런 기분을 느끼며 산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다급하게 여기며 산다면 우리의 영혼은 고장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리더에게는 반드시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한에서, 우리는 느긋한 태도가 필요하다. 느긋함은 게으름이 아니다. 솔로몬은 개미를 보며 풍족한 노동의 교훈을 배우라고 권면한다(잠6:6-11). 개미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느긋하게 해치울 뿐이다. 이처럼 경건한 느긋함과 불경건한 게으름은 전혀 다르다. 게으름은 생기를 주지도, 선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예수는 게으르지 않으셨다. 부지런히 일하셨고, 단호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이셨다. 그러나 당신 자신과 제자들이 휴식이 필요한 것도 알고 계셨고, 여유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지 않으셨다. 우리는 경건한 느긋함과 불경건한 게으름을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권태, 현실도피에 빠지는 것은 분명한 게으름이다. 어딘가에 있을 더 나은 인생을 상상하면서 자기 인생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현재’에 살기보다 ‘만일’이라는 환상에서 사는 것이다. 영적인 훈련은 지루한 시간낭비가 되고, 영적인 안목은 흐려진다. 유혹하는 자는 “일은 많이 하지 않았어? 그러다보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네가 좋아하는 웹사이트를 방문해 봐.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확인해야지? 누가 네 블로그에 방문했는지 확인해봐.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잠깐 머리를 식혀는 것이 어때?”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를 따르다 보면 결국 메마르고 불쾌한 영적 불모지에 떨어지고 만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내게 준비해주신 좀 어렵지만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에서 손을 떼게 된다.
또한 과로는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다. 더 많은 일을 함으로써 내가 더 가치 있게 된다는 착각을 하고,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좀 더 많은 성과를 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태도는 그 일의 ‘질’보다는 ‘양’에 집중하는 태도로서, 많은 일을 했지만 정작 가치 있는 일은 별로 하지 못하게 된다. 권태에 빠져 웹서핑과 소셜미디어를 뒤지는 행위와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런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생활에서도 나타난다. 목사는 교인들을 바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교인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에 집중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반대로 여러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사랑은 내게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혀주고, 세상의 오락이 줄 수 없는 희락을 얻고, 안달복달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화평을 누리는 등, 성령의 임재를 추구하며 그 열매를 누릴 때 우리는 게으름이 아닌, 경건한 느긋함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예수는 세상의 속도를 따르지 않고 은혜의 속도에 맞춰 사셨다. 예수를 본받아 은혜의 속도로 사는 삶은 영적 리더십의 핵심이다. 속도에 중독된 세상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이 지상에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맥동하는 생명과 평화의 속도로 사는 사람이 곧 영적 리더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내 인생의 속도가 그리스도의 속도와 일치하는지 점검해 봐야한다. 예수는 게으르지 않으셨지만 느긋하게 풍성한 삶을 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