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친위대 중령이자 히틀러의 열광적 지지자였고, 그래서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하는데 앞장섰던 칼 루돌프 아이히만. 그가 아르헨티나에 도주했다가 1960년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의 집요한 추적 끝에 체포되었다. 1962년 5월에 처형될 때까지 지루한 재판과정에 함께 참관한, 그 역시 혹독한 홀로코스트에서 하마터면 희생제물이 될 뻔했던 독일 출신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스라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였다. 아렌트가 본 인간 아이히만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평범한 사람도 이런 무서운 악을 행할 수 있다고. 어떤 인간을 악마로 이끄는 것은 절대 악이 아니라 우리 안의 양심의 선택을 저버렸을 때이며, 악은 평범한 데 있는 것이며 도덕과 양심을 외면하는 순간 악이 잉태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아렌트는 2차 대전과 같은 비극을 만들어낸 악은 극악무도한 그 어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인간의 선에 대한 의지에 복종하지 않음으로 왔다고 함으로 인간성 안에는 악마성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이런 악의 평범성은 약 10년 후에 필립 짐바르도라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에 의해 입증되었다. 신문에 난 모집광고를 보고 자원한 24명의 사람들을 동전을 던져 가짜 교도관과 가짜 죄수로 나누어 역할을 맡긴 첫날부터 평범했던 그들은 진짜 교도관과 진짜 죄수로 돌변하였다. 가짜 교도관들은 갈수록 난폭해져서 죄수들에게 맨손으로 변기청소를 시키고 머리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게 하고 심지어는 성적인 학대까지 감행하여 6일 만에 중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33년 뒤인 2004년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에서 미군이 이와 거의 유사한 포로학대를 자행하는 사진들이 전 세계에 공개되어 큰 충격을 일으켰다. 미군들은 포로들의 옷을 벗겼고 봉지를 씌웠고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을 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내게 만든 사건들이었다.
지난 달 킬링필드로 악명 높은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수도 프놈펜 거리조차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오염되고 낙후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친절하고 얼굴에는 선의가 가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선량했고 어린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은 인상적일 정도로 착하였다. 도로사정이 나쁜 것은 물론이고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뒤엉켜 가히 교통지옥이라 할만하였으나, 교통사고는 단 한 건도 보이지 않았고 그 이유를 물어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착하고 순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계속 내 안에 한 가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 킬링필드를 일으켰단 말인가?’
1975년부터 79년까지 당시 7백만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을 크메르 루즈 정권은 학살하였다.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지식분자들이었다. 약간이라도 배웠거나 안경을 썼거나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이들과 그 가족들은 다 죽였다. 총알이 아까워 대부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목을 베어 죽이고 산 채로 파묻어버렸다. 한 사원에서는 10만 명이 죽었다 하는데 수호사자상의 엉덩이에 칼을 갈아 죽였기에 엉덩이가 뭉턱 잘려나갈 정도로 수없이 많은 인명이 희생당했다. 어린 아이들은 다리를 잡고 나무에 머리를 메어쳐 소위 ‘킬링트리’라 이름을 붙였다.
킬링필드 박물관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해골과 뼈들로 인해 경악해야 했지만 막상 놀란 것은 2009년 전범재판에 놓여 35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인 카잉 구엑 에아브라는 악명 높은 감옥소장의 사진을 보고서였다. 그는 끝내 범행을 부인하였으나 그가 어떤 악을 저질렀는지 속속들이 증언들이 나왔기에 중형이 불가피했다. 그런데 그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서 악의 평범성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 그의 눈빛은 너무도 선해 보였다. 그러면서 내 안에 계속되는 중얼거림. “인간이기에 악하다.”
내가 방문한 기간이 마침 6.25동란 67주년이 되는 주간이었다. 군인사망자 140만 명, 민간인 사망자 250만 명. 동족상잔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수다. 캄보디아인들만이 극악해서 죄악을 저지른 것이 아니고 인간은 다 악해서 죄 가운데 살며 우리 스스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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