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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 “신은 죽지 않았다!”

나는 기독교 신앙 배경이 전무한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교회라는 데에 발을 디디고 들어섰을 때 교회는 “별세계” 그 자체였다. 사춘기 청소년으로서 내가 경험한 별세계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순간부터 집안에 두 종교가 있으면 망한다며 협박하는 부모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당시 친구들이 없이는 살 수가 없었기에,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떨어져 사는 건 지옥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부모가 절대로 기독교 신앙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말보다는 친구들이 교회로 나오라는 말이 훨씬 달콤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나는 부모의 핍박을 ‘굳건히’ 견딜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신앙은 핍박 속에서 자랐기에 오늘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끼며 그 마음이 나를 지켜주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이 자유의 땅 미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것은 핍박이란 환경을 불러온다. 우리는 이 땅의 사람들이 저마다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기에 기독교가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이 된 데에는 상당 부분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가치대로 살았더라면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이렇게 팍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핍박이 불가피하며 이렇게 핍박 받을 때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마5:10-12, 요17:15,16).

이런 핍박이 보편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영화 두 편이 최근에 만들어졌다. “God’s Not Dead”(GND/신은 죽지 않았다)의 1, 2가 바로 그런 문제작이다. GND1은 무신론자였던 테네시의 안과의사 밍 왕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어떤 대학의 철저한 무신론 철학교수 제프리 래디슨이 자신의 수업을 듣기 위한 조건으로 “신은 죽었다”라고 쓰고 서명하기를 강요하였다. 그러면서 협박도 잊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대학의 강의실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수의 요구대로 순순히 신이 죽었음을 쓰지만 조쉬 휘튼이라는 학생 하나가 “절대로 쓸 수 없다”고 버틴다. 이에 화가 난 교수가 신이 존재함을 증명하여 학생들과 자신의 마음을 바꿔보라는 과제를 주었고 조쉬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는 감동 스토리이다. 이 영화는 신앙의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과학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의 도구로도 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출발한 영화였고 감동적으로 결말을 이어갔다.

올해 부활절에 개봉된 GND2는 전편에 비해서 더 잘 만들었고 훨씬 흥미진진하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레이스라는 교사가 고교 교실에서 마틴 루터킹 목사와 마하트마 간디의 사회를 위한 봉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브룩이라는 여학생이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과 일치하느냐를 물었고, 교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을 알려주면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것을 다른 학생이 교사가 국가와 신앙의 원칙을 어겼다고 고발하여 민사소송이 되었다. 교사는 해직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무신론 부모들은 교실에서 설교가 웬 말이냐며 반대 시위를 하는 가운데 법정에서 배심원들의 판결을 기다리며 시종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다가 극적인 반전을 맞이한다. 이 영화를 감독한 기독교인 해롤드 크론크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성령께서 주시는 힘이 그를 이끌었다고 간증하면서 “믿음에 대한 핍박 앞에서 진실한 신앙을 세상에 얼마나 당당하게 말하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영화의 제작 의도를 밝혔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였다. 보면서 모처럼 감동어린 눈물도 흘렸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참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에서 겪는 핍박이라는 것은 중동지역이나 아프리카와 같은 다른 나라들에서 겪는 어려움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도 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마지막 날에는 알곡과 가라지로 나눠질 것이다. 알곡들은 이런 핍박으로 더 단단해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마음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자승자박은 아닌지. 우리가 기독교의 가치대로 살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이 이런 모든 핍박의 환경도 감당해 낼 정도로 무장되어 있는지, 또한 그럴 만큼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에 대해 확신하는지.

danielkmi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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