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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은 것은 순수함이다!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이민생활 속에 어떤 이유로 가든 대개의 경우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을 다녀오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 지루한 비행시간을 잘 보내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잠을 자는 것도 만만치 않고 기내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책 한 권을 들고 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주제가 너무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운 책도 안 된다. 책이 너무 두꺼워도 얇아도 안 된다. 너무 어려워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책이나 무슨 이야기인지 다음 이야기가 뻔 하면 둘 다 흥미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한국 여행 중에 택한 책은 ‘문익환 평전’. 800페이지가 넘으니 다소 부담스러운 책이기도 하였다. 신학적으로 나와 거리가 먼 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선택하게 했다.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에 따라 여러 차례 감옥에 들어간 분으로 삶의 궤적이 나와 다른 분인 것에 호기심이 생겨 얼마 전 사둔 책이었다.

우선은 유려한 문체로 그의 평전을 써준 호사를 누리는 문 목사가 부러웠다. 그는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해외 민족운동과 항일운동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북간도의 계획 이주촌이며 윤동주의 고향으로 유명한 연길 바로 밑에 있는 명동촌 출신이며 그곳에서 초중 고교를 마쳤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끌었다. 당시 명동촌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구국일념으로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애국지사들이 이상촌 건설의 일환으로 세운 마을이었다. 또한 그것이 기독교 신앙과 결부되어 참된 신앙인이라면 자연스럽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그런 환경이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문 목사에게 개인과 국가의 운명은 같은 배를 탄 동지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는 흑백 영화 “동주”에 나오는 윤동주, 송몽규와 함께 더 할 수 없이 다정한 친구였다는 사실이 독서의 흥미를 더해 주었다. 윤동주는 어릴 때부터 문학에 특별한 재주가 있었고, 송몽규는 연설을 잘했고 정치적인 리더십이 두드러져서 장래에 독립군이 될 가능성이 애초부터 높았다. 그런 가운데 문익환은 훤칠한 외모에 음악적 재능이 분명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사람이었다. 영화 “동주”에서도 보듯이 윤동주는 송몽규가 먼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교토제국대학에 들어가고 성격이 더 적극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문익환은 윤동주에 대해 늘 콤플렉스를 느꼈다. 그런 콤플렉스가 문익환 목사에게 작용하여 29세의 나이로 이국땅에서 애석하게 요절한 윤동주의 삶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영향을 미쳤을까. 문익환 목사는 해방 이후 6.25 동란을 겪으면서 그의 탁월한 영어실력으로 통역원으로 일하였다. 그 가운데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한국인 없이 한국의 문제를 결정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하며 민족의식이 더욱 불붙는다. 그리고 전쟁 후 혼란스런 분위기에서 나라의 어지러움을 앞장서서 해결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든다. 성경의 ‘공동번역본’을 번역하는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번역가로서 심혈을 기울이는 반면,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되어 국가보안법을 어기면서까지 방북을 결행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나 얼싸안고 형제 운운하기까지 한 것들에 대해 정치적으로도 동의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을 느꼈다. 그러나 언제나 세상의 약자, 그리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서 민주화 운동을 하여 총 5회에 걸쳐 12년간이나 옥살이를 하는 그런 신념어린 삶의 모습을 보면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만개한 꽃처럼 피어나지 않았는가. 그는 77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21개월의 수감생활을 형 집행정지로 마감한 때가 76세였다. 그러니까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많은 이들과 입장을 달리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명으로 받은 것을 위해 노구에까지 달려갈 길을 마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킨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오늘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질타의 대상이 된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핍박과는 다른 것이다(눅12:51). 교리적으로는 정통이지만 생활이 나쁜 목사와 교계 지도자들이 너무나 많다. 세상이 말하는 횡령, 사기, 학력 위조, 세습, 성폭행, 살인과 같은 대표적인 죄악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진 목사들의 죄악은 아닐지라도 많은 목회자들의 세속화와 부패지수가 심각하다. 지난 4월 9일은 110년 전에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을 내려주신 날이다. 그날 그 시간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을 보면 그들 자체가 타다 남은 부지깽이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심으로 응답하셨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교회를 비롯한 전 세계의 교회들의 지각변동을 일으키셨다. 교리적인 정통성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지만 오늘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순수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이들의 삶 앞에 부끄러워할 줄 알며 우리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세상의 그늘에 서있는 자들의 편에 기꺼이 서는 순수함이 회복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danielkmi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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