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서 목사 (엘크그로브 가스펠교회)
새해가 시작된 후 신약 성경의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산상 수훈 중 특히 팔복에 관한 마태복음의 말씀이 마음 속 깊이 울림을 갖고 다가왔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오늘날이나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항상 슬픔 속에서 애통해 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병과 사고, 전쟁과 폭력 등의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통해 하는 모습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애통해 하는 자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약속한 위로 속에는 우리 성도들이 베풀어야 할 위로도 당연히 포함되어있다고 믿습니다. 주님은 항상 제자들과 함께, 또한 제자들을 통해 모든 사역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위임 속에는 신뢰와 훈련이라는 고상한 목적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양들이 항상 배부르고, 편하고, 무탈하고, 안온할 수만은 없음을 아시는 주님은 목자로 섬겨야 할 종들에게 애통해하는 양들을 위해 그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말씀과 능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애통해하는 자들을 향해 위로자가 되기는커녕, 훈계와 설교로 마치 야단을 치기도 하고, 섣부른 충고와 조언으로 상처만 더 깊게 만드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아마도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자신도 늘 설교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살다보니, 단 30분정도도 남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하거나, 위로를 할 목적으로 심방을 할 때도 피 상담자의 모든 문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당장 해결해주려고 하는 습성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이런 증상을 “Pastoral Fixing Syndrome”(PFS, 목회적 해결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애통해하는 사람들은 그 애통해하고 있는 마음의 웅덩이에서 스스로 그 모든 슬픔을 직시하며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목회자나 상담자의 역할은 그 어둡고 외로운 애통함의 구덩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에게 내려가 그저 그 옆에 앉아서 그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친구가 되어줌으로써 진정한 위로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애통함의 시간은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되어지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시간입니다. 고인에 대한 추억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감사와 용기를 발견합니다. 아쉬움과 죄책감으로 인해 닫혀졌던 마음의 문을 열고 내면적인 고통과 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옆에서 그 슬픔을 수긍하며 들어준다는 것은 치유와 회복의 여정에서 편안한 동반자가 되어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의 자리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올 때까지, 몸소 애통해하고, 애통한 마음을 말하고, 위로 받을 모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위로자 역시 애통해하는 자와 같이 시간을 보내다보면, 함께 슬픔을 공유하게 되는 단계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은 후, 슬픔에 젖어있던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면서 몸소 눈물을 흘리신 모습이 요한복음 11장 35절에 기록되어있음을 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로마서 12장 15절에서 말씀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셨습니다. 애통해하는 성도들을 위로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도구로 모두 쓰임받는 목회자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tdspar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