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덩그라니 남겨놓고 있다.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내려오심의 성탄 절기를 맞이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2:6-8). 이 절기의 영성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며, 내려오심이며, 비우심이며, 대속의 죽으심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나는 얼마나 낮아지고, 비우고, 내려오고, 죽으려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저 부끄럽기 그지없다. 오히려 오르려 했고, 채우려 했고, 살려고 했고, 순간순간 작은 성취에 취하여 안일에 빠져있는 모습들은 아닌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속에서도 자칫 이러한 오만의 오류에 빠지게 됨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hubris’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도 사용되는 이 말은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의 연합군 장군인 아킬레스가 트로이 왕자인 핵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발가벗긴 후 말에 매달아 끌고 다니면서 트로이 왕을 능멸하는 오만한 행위를 보고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문화 비평가인 아놀드 J. 토인비가 과거에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공 경험에서 나온 능력과 방법이 항상 절대적인 것으로 우상화하려는 오만의 극치를 문화 인류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사용한 단어이다. 한때 세계 최고의 컴퓨터회사였던 IBM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중대형 컴퓨터와 개인용 PC로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였으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멸종하는 공룡이 되어버렸음을 보게 된다. 한때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소비자와 시장에 나타나는 급변하는 변화와 미래에 적절하게 부응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드웨어에서는 Dell이나 HP, 소프트웨어에서는 Microsoft의 공세에 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결국 2005년 PC사업부가 중국의 Lenovo에 매각되면서 정보화시대의 신세대를 열었던 ‘IBM PC’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워크맨의 성공신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애플에게 MP3 시장을 통째로 내준 SONY, 탄산음료 시장의 우위에 취해 웰빙, 기능음료 시장에서 펩시에 밀려난 코카콜라, 디지털 카메라의 내일을 과소평가했던 필름 카메라의 왕자 코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예는 많이 있다. 성공체험의 우상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을 방해하여, 국가나 기업을 실패로 이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비단 기업이나 국가만의 얘기가 아니다. 오늘 기독교 문명의 역사가 산 증거이다. 중세의 기독교 hubris가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오늘날까지 문명전쟁으로 충돌을 야기하고 있고, 선교(Mission)라는 미명하에 문화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의 괴물을 낳았다. 교회마다 종탑은 높아지고 건물은 화려하게 지어졌지만, 그 허영적 욕망과 오만이 오히려 세상을 향한 거룩한 영향력을 상쇄해갔다. 그런데 그러한 중세의 기독교 hubris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때 한국 교회는 1,500만의 기독교 신자,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 선교 대국 등을 자랑했는데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조국 교회는 교권의 타락과 성직자들을 포함한 직분자들의 부패는 극에 달하고 있다.
한때 최고의 성공을 자랑하는 대형교회들마다 수십억 혹은 수백억 횡령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들이 연일 신문지상을 덧칠하고 있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 총회에서 가스총 사건이 터지더니 급기야 조폭을 모방하는 목사들의 칼부림 사건이 교회 사무실에서 발생했다. 이제는 교회나 노회, 총회의 분쟁이 법정으로 비화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일반화되고 상식화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르네 지라르가 말하는 대로 인류문명의 특징인 타자 권력에 대한 폭력적 모방 욕망이 버젓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휴브리스가 심해지면 도덕적 균형과 판단력을 상실하고 만다는 것이 토인비의 충고다. 그래서 휴브리스가 만연한 사회는 위험한 것이다. 이제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거룩한 성탄의 절기를 맞아 영적 휴브리스를 더욱 경계하며 내 안에 심기워진 ‘하나님의 씨’(요일3:9),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성으로 충만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