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곤 목사 (참사랑교회)
날씨가 제법 선선한 즈음, 새벽기도가 끝난 후 집에서 가까운 존스비치로 산책을 나갑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기러기는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거리가 대략 지구 한 바퀴인 4만km를 날아간다고 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거리를 날아가기 위해 기러기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듯 V자 대형을 그립니다. 조류학자들은 연구하기를 여기에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원리는 V자 대형을 그리며 맨 앞부분에 날아가는 기러기들이 힘차게 펄럭이는 날개 양력으로 인해 뒤에 따라오는 기러기들은 그 힘이 71% 정도 절약된다고 합니다. 29%의 힘만 갖고도 함께 갈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맨 앞의 기러기는 힘센 기러기들이 자리 잡고 뒤로 갈수록 차츰차츰 약한 기러기들이 자리를 잡다가 맨 마지막에는 병든 기러기, 나이 많은 기러기, 어린 기러기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맨 앞의 기러기는 힘도 필요하지만 바람, 속도, 위험요소 등등을 파악하여 방향도 잡습니다. 교회나 공동체에서도 깊은 영성과 경륜이 있는 성도들이 맨 앞에서 날아가야 합니다. 괜히 나대는 것 같고 혹은 앞에 나서는 것이 싫어서 자꾸 뒤로만 가려고 한다면 누가 맨 앞에서 공동체를 천국과 구원과 영생으로 인도해 가겠습니까? 공동체 안에서의 겸손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함께 건강하게 지키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나 하나쯤은” 뒤로가 아니라, “나 하나만큼은” 앞으로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앞으로 간다는 것은 전체를 인도해야할 그만큼의 책임과 배려가 뒤따라야 합니다. 물론 맨 앞에 갈 자격도, 실력도 없는데 자리만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부분은 공동체의 자정능력에 달려있습니다.
두 번째 원리는, 기러기들은 날면서 끊임없이 “꺼억꺼억”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장 앞에 날고 있는 리더와 그 그룹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고 합니다. 교회나 공동체를 인도해 나가기 위해 앞장서는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비난하거나 비평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시샘하거나 질투해서도 안됩니다. 오히려 나는 못하지만 나 대신 맨 앞에서 공동체를 위하여 힘있게 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어가라고 응원의 소리를 들려줘야 합니다. “나대신 수고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내야하는 소리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기러기들은 날아가면서 그 자리가 시시때때로 바뀐다고 합니다. 맨 앞의 기러기들이 어떻게 계속 4만km를 맨 앞에서 날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가다가 이제 힘이 딸리고 지치면, 그동안 힘을 축적했던 그 다음 대열의 기러기들이 다시 앞으로 나오고, 지친 기러기들은 그 뒤로 위치를 바꿉니다. 그동안 다시 힘을 축적하여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함입니다. 참 과학적인 비행입니다. 우리도 공동체를 위하여 가장 앞장서서 수고하고 애쓰는 성도들이 지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에이! 저것 봐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꼴좋다!‘ 하고 손가락질하지 마세요. 오히려 ”얼마나 힘들었어. 지금까지 그동안 참 수고 많이 했어! 잠깐 뒤로 와서 쉬어! 부족하지만 당신처럼 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동안 내가 그 봉사 자리 한번 감당해 볼게.“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참 아름다운 복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네 번째 원리는, 대열에서 이탈되는 지친 기러기는 동료 중 두세 마리가 남아서 곁을 지켜줍니다. 한 마리도 이탈 없이 다함께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는 나만 잘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기 위해 주변도 살펴보면서 속도도 늦춰줄 줄 아는 여유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프리카 한동네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한 여행객이 아이들에게 유머러스한 제안을 합니다. ”저 앞에 있는 나무에 맛있는 사탕, 과자, 초콜릿, 코카콜라를 넣어 달아 놓을 테니 누구든지 먼저 달려가 그 봉지를 잡는 사람이 임자다. 그러니 이제 땅하면 달려가라.“. 땅하자 여행객은 놀랐습니다. 기대하기는 어린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두다 뛰기 시작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들은 한명도 뛰어가지 않고 다같이 애기하며 깔깔대고 웃으며 다같이 그 나무에 달린 봉지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 여행객이 놀라서 묻습니다. ”왜 먼저 뛰어가지 않니? 다 네 것이 될 텐데.“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내가 가지면 제 친구들은 못가지기에 불행하게 될텐 데요.“ 나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나만 잘났다고, 다른 사람은 능력이 없어서, 타고난 게 그러니 내가 어찌하냐고, 그런 거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냐고, 그러다가 나도 불행해지면 어떻게 하냐고, 나라도 행복해져야 하지 않냐고, 우리는 이런 세상과 공동체에 너무나도 익숙한 자기 정당화와 합리화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아프리카의 한 어린이들의 이야기인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뜻의 우분트“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뒤처지는 형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만 달려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다가 뒤돌아보며 잠시 기다려 주고 함께 가는 배려하는 공동체, 우분트 공동체가 교회이기를 희망해봅니다. 이 가을에 우리 이민교회 공동체들이 자연에서 배우는 ”이름다운 비행“이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