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20세기를 맞이하기까지 인간은 새가 아니기 때문에 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03년 12월 17일 미국의 키티호크에서 라이트 형제는 바람이나 수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동력에 의해 플라이어 1호라는 비행기를 날게 하였다. 비록 이 실험에서 비행기는 12초 밖에 날지 못했지만 인간도 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열매를 맺은 첫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인간은 비약적으로 항공기를 발전시켰다. 나는 비행기가 제트 엔진에 의해서 양력의 도움을 받아 자유자재로 뜨고 내리는 이 시대에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렇게 무거운 쇠덩어리가 하늘에 뜨고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최대의 중량이 388톤까지 된다고 하니 300여 명을 태우고 날아가는 점보 여객기 정도가 된다면 대개는 350톤의 무게라고 한다. 인간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지난 7월 14일에는 태양계의 가장 끝에 있는 명왕성을 그랜드 피아노 크기의 뉴호라이즌스호가 9년반 만에 거의 50억km를 총알속도의 20배에 해당하는 초속 5천km로 주파하였다. 이것은 서울에서 친 골프공이 LA에 와서 홀인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나! 정말 인간의 능력은 한마디로 대단하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것이지만(시8:5)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의 지성적인 면이 작동할 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 발휘되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면은 감정이나 의지가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내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렇게 우주산업까지 개발시킬 수 있는 인간은 생각을 바꿈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무한대의 능력까지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혀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감옥의 열악한 현실을 넉넉하게 견딜 수 있다는 말일 뿐만 아니라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이 받은 소명을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끝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이며 결의이다. 그는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참되고 칭찬할만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라고 충고하였다.
또한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 자신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따라서 행동하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단순한 이론 제시에서 그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삶에 관하여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의 완전한 프로였다. 그는 발상의 전환의 대가라 할 수 있다. 어디 바울뿐인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다윗, 엘리야 등등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극한 현실 속에서 굴하지 않고 시련을 이겼다. 그들은 한결같이 신앙의 프로들이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신앙생활에서도 프로는 아마추어와 다르다. 아마추어는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뻐하지만 프로는 항상 기뻐한다. 아마추어는 필요할 때 기도하지만 프로는 쉬지 않고 기도한다. 아마추어는 좋은 일에 대해 감사하지만 프로는 범사에 감사한다. 아마추어는 시험 당하면 절망하지만 프로는 시험을 당할 때 감당할 만하다고 말한다. 아마추어는 주님의 일을 하지만 프로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님의 일을 힘쓴다. 아마추어는 영적 전쟁에 필요한 무기들을 한두 개 갖고 있지만 프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 오늘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속인다. 그래서 아마추어 신앙인들은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세상에 소금과 빛의 사명을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소망 없는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앙의 프로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은 나름의 연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주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지켜주실 줄을 믿고 우리에게 능력 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포하고 전진하면 제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
언제부턴가 기독교인들이 나약해져버렸다. 근거 없는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교인들을 들뜨게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알지 못하고 인생의 문제에 처음부터 꼬리를 내리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려는 자세는 더욱 큰 문제다. 우리는 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점보 여객기도 되고 우주선도 된다. 나는 벽을 느끼는 현실에 가로 막힐 때마다 “거위의 꿈”을 되뇌곤 한다. 헛된 꿈은 독이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는 세상의 속임수를 믿지 말라.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때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조차 높이 날을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나약한 아마추어로 살지 말라. 강인한 신앙의 프로로 당당히 문제에 직면하라. 날아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