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우리교회에서 제법 오래된 교우들은 다 나의 좌우명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라는 것을 안다. 나는 20대 청년의 때 서울 광화문 우체국 앞에 커다란 돌비석을 보고는 우뚝 멈추어 섰다. 그 돌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박목월” 시인이자 장로였던 박목월 선생의 여덟 자로 된 시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저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야, 하고는 마음으로 평생 붙잡고 살게 되었다. 얼마 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4)라는 말씀에서 “변함없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아 가장 좋아하는 말씀으로 삼았다.
사실 내 속에서는 이랬다저랬다 하려는 마음이 죽 끓듯이 일어난다. 실제로 말이나 행동으로도 일관성 없이 살 때가 있기도 하여 부끄럽다. 그래서 더욱 “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붙잡고 “변함없이”를 붙잡는다. 왜냐하면 변함이 없는 것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한 교회를 사랑하고, 변함없이 한 아내를 사랑하고, 변함없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변함없이 성도들을 사랑하고, 변함없이 한국과 미국과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타락한 세상은 이랬다저랬다 한다. 조변석개(朝變夕改)라 하던가? 아침에 바꾼 것을 저녁에 또 바꾼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탄의 전략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마음이 쫓기면 대개 사탄의 궤계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다. 사탄은 여기서 잠깐 저기서 또 잠깐 머물다가 또 떠나게 만든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이 악인의 특징이잖은가?
성경의 인물 중 욥은 1장에 보면 당대에 가장 의로운 사람이면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인간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대표적으로 욥에게 고난을 주셨을지도 모른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인 욥은 일곱 명의 아들과 딸 셋이 있었는데 아들들의 잔치가 끝나면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다. 혹시 아들들이 마음으로라도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죄 짓는 것을 밥 먹듯 하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죄를 범한 것도 아닌데, 물증이 아니라 심증조차 없는 상태에서도 혹시 몰라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 용서를 구하는 태도야말로 욥이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였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막상 성경의 다음 말씀이 나에게 충격이 되었다.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1:5). 욥이 얼마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의 사람인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욥은 강산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욥은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욥은 그야말로 “항상”의 사람이었다.
오늘 교회에는 이와 같은 “항상”의 사람이 필요하다. 기뻐하는 것은 웬만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도 항상의 사람이 되어야 가능하다. 항상의 사람이 되는 데에는 많은 인내를 요한다. 내가 아는 어떤 장로는 서리집사일 때에도 교회의 일이라면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열심히 했다. 예배드리기 전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펴서 식사를 준비해야 했고 예배 후에는 모든 쓰레기를 도맡다시피 하며 갖다 버렸다. 그래서 그의 와이셔츠는 항상 젖어 있었다.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늘 그랬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안수집사가 되려고 저 야단이라고 했다. 그래도 꾸준히 봉사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안수집사가 되었다. 안수집사가 되고나서는 더 열심히 봉사하였다. 그러니까 장로가 목표라고 뒷말들을 해댔다. 남이 뭐라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는 일만 할 뿐이었다. 결국은 장로가 되었다. 장로가 되고 난 다음에도 변함이 없이 겸손하게 앞장서서 봉사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더니 그를 존경하고 따른다.
그런가 하면 걸핏하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들락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문제의 원인을 교회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만 정작 문제의 원인은 자신일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지금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참신자 된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을 변함없이 지킨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전 세대에서는 결혼하면 거기서 끝이었다. 이혼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가정을 지켰다. 지금 세대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이혼율에 있어서 엇비슷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지사충성(至死忠誠)한다면, 그리고 자기들이 섬기는 교회에서 또 그렇게 섬긴다면 세상이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변할 것이다. 세상은 항상의 사람, 변함없이 늘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