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사람이 망각할 수 있는 것은 때로 큰 축복이다. 사람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힘든 일, 아픈 일, 도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 인생의 위기와 고난들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런 소용돌이 속에 놓여 신음할 때가 많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는 삶의 어려움과 위기, 고난들을 통해 영적인 해석을 가하고 교훈들을 얻어내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을 다시 한 번 반추하고 기억해내는 것일 것이다. 나에게도 7월은 기억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귀중한 달이 되었다. 아마도 나는 내 생애 7월에 있었던 일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작년 7월에 뜻밖의 뇌수술을 하게 되면서 인생의,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큰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뇌출혈인 경막하출혈로 응급수술을 하게 되었고 생명은 찾았으나 언어기능을 담당한다는 왼쪽 뇌를 수술했기에 한동안 말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회의를 느꼈다. 내가 말하는 일상의 삶은 목사로서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도 말이 나오지 않았고 말이 생각나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말을 하기는 해도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곁길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란! 말을 가지고 사는 목사가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목사’가 아니었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서 계속 성경을 읽었다. 마침 평소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돌아오라’는 말씀이 눈에 띄었다. 이사야서에 그렇게 많은 ‘돌아오라’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러다가 돌아오라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렸다. 하나님은 내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는 감동이 왔다. 그 순간 나는 ‘저는 주님을 떠난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나님께 반문하였다. 그 뒤에도 계속 돌아오라는 말씀은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래서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늘 바빴고, 그래서 말씀도 대충대충 읽으면서 잘 사는 줄 생각했다. 기도시간도 억지로 시간만 채우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아직 내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은 부분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셨고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나님, 저 돌아갈께요.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그 후로 성경도 소리 내어 읽고, 아내 한 사람을 앉혀놓고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설교하였다. 처음에는 말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한 마디하고는 한동안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날그날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했다. 그 결과 7월 9일 수술을 받았는데 그 날을 뒤집은 9월 7일에 첫 설교를 했고 10월부터는 계속 설교를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최근 극심한 캘리포니아의 가뭄과 한국의 메르스 사태와 같은 전염병, 동성결혼합법화와 같은 이슈들, 그리고 갈수록 하나님을 등져가는 이 시대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는 “내게로 돌아오라”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읽혀진다. 물론 지금은 가뭄과 전염병 등이 하나님의 징계수단이었던 구약시대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합동신학교의 송인규 교수의 지적은 옳다고 생각된다. “구약시대는 신정 통치적 섭리 방식을 취했기에 심판이 상응적이며 즉각적이었으나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중보자적 통치의 도입으로 심판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요5:22). 오늘날 재해 등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 방식은 비상응적이고 유보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팔이나 아이티의 지진, 일본의 쓰나미에 대해서도 함부로 정죄하지 말고 간절한 기도와 적극적인 구호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교회사에 보면 이런 가문과 전염병이 창궐할 때 교회는 겸손히 회개하고 영적으로 각성하여 큰 축복을 경험한 예들이 나온다. 14세기 유럽의 경우 십자군 전쟁의 후폭풍으로 민생은 파탄 나 있었고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는가 하면 백년전쟁, 농민전쟁 등으로 유럽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었다. 그때 잉글랜드의 작은 도시 노리치의 무명의 여사제 줄리안은 자신이 심한 질병을 앓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All shall be well)는 메시지로 백성들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유명한 독일의 토마스 아 켐피스는 거룩을 회복하고 겸손하게 온전히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불안과 고통을 느낄 때가 바로 축복의 시기이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 있는 희망을 붙잡으라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역설하였다. 지금의 가뭄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가뭄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자고 설교한 후 주일, 이 건기에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격려를 느낀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