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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적과 다윗의 적의 차이

이희녕 사모 (프린스톤한인교회)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삼상24:17).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24:20). 눈에 불을 키고 쫒으려면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사울이 중심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려는 몸부림입니다. 미미한 무명인이 왕이 되어 불안한 사울에게는 확고한 왕위가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에 누구라도 왕위에 위협적인 존재는 그의 적입니다. 왕 자리를 지키기 위한 생명 건 몸부림이 짐승만도 못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게 합니다. 왕위의 위협 존재인 다윗을 제거하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제사장들도 눈 깜짝 않고 85명이나 죽일 수 있었고… 힘에 아부하여 살아남기 위해 파렴치하게 고자질하는 그일라 사람들도 생기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을 치러 가다가도 다윗이 엔게디에 있음을 누가 알리니 3천명의 군사를 끌고 와 다윗을 치러올 정도로 다윗을 철천지원수로 삼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도 체험하고 왕의 자리에까지 가는 은혜의 기회를 입었건만, 자신의 복을 화로 바꾸는데 천재적 소질을 발휘합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를 나눠보지 못한,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빗겨간 비극의 인물입니다. 과연 다윗이 사울의 적이었나요? 다윗은 사위도 되고 애국 공신입니다. 확실히 왕의 자리를 굳히는 방법은 백성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을 위하는 다윗을 대적하고 자신의 시기심만 따르다가 결국엔 다윗으로 하여금 위기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모습을 크게 드러나도록 높여준 셈이 되고 사울이 그토록 사무치게 목말라하는 파워로 변하니! 사울이 미치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공의, 거룩, 사랑으로 멋지게 어우러져 다스리시는 세상 경영법이십니다. 그 기막힌 지혜를 감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적을 곧 자신의 적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머문 곳은 목숨을 걸고 지킵니다. 자격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다윗에게 좋은 일이 되니 사울은 정말 환장합니다. 좌절될수록 집요하게 수단 방법을 총동원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삶의 중심이 되니 도무지 멈추지 못하는 권력 중독도 이쯤이면 정말로 끔찍합니다. 사울이 만약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생각하듯 아버지 심부름이나 잘하고 적게 사는 것에 족할 위인이건만 담을만한 인격의 그릇이 적어 복이 화가 되었습니다. 어디 사울뿐인가요. 우리 모두 내면에 내재하는 사울이 있기에 마음이 꿀꿀 씁쓸합니다. 앞장 선 리더십이 사울같이 파워 중독이면 그 밑에 있는 이들의 삶이 고달프고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초심을 잃고 사울과 같이 내 사역으로 변경해 성도들을 자신의 존재를 위한 도구로 이용함에 무감각합니다. 주님께서 몸 된 교회에 진정 공의와 거룩함으로 왕으로 모시는 주님 마음에 합한 사명자 다윗을 많이 일으켜 주시길 눈물로 기도합니다. heenlee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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