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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별설교 | 아기 예수 | 누가복음 2:8-14

권혁천 목사 (샌프란시스코 중앙장로교회 담임,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48

어떤 사람이 산타클로스로 이름을 개명하려고 신청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그 요청을 기각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탄절의 상징은 산타클로스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집집마다 팬으로 잔뜩 부풀려진 산타 인형이 손을 흔듭니다. 꼭 ‘난 아냐. 난 아니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위안은 몇몇 집의 마당에 차려진 베들레헴 마구간의 정경입니다. 마리아, 요셉, 짐승 몇 마리... 좀 더 비싼 것은 동방박사 세 사람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싸나 비싸나 빠질 수 없는 것은 마리아가 안고 있는 예수, 아기 예수입니다. 한번은 동네 근처에 차를 멈추고 어떤 집의 마당에 차려진 성탄 장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심은 아기 예수였습니다. 맞습니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1. 아기로 오신 예수

 

본문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가 나심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구주가 나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구원자는 ‘아기’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 2:12)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그 메시야가 보자기에 싸여있는 어린 아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아기라면 남을 구원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도 누군가에 의지해야 생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키는 너무 작아서 말이 밥을 먹는 구유도 넉넉하고, 여행 중의 마리아가 치밀하게 출산준비를 못했음에도 아이를 싸안을 보자기는 충분할 정도로 아기는 작았습니다. 젊은 엄마의 품에 안겨 보호를 받는 이 아이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니....

너무 작고 너무 약해서 예수‘님’이라는 호칭도 어색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좀 삐딱하게 설명을 해서 그렇지 성경의 기록은 이 아기가 작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이 작은 생명의 탄생을 위해 동원되는 현상들을 보십시오. 우선 동방에서는 신기한 별이 빛을 발하며 떠올랐습니다. 천문학자들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별이었습니다. 그리고 찬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에게, 그리고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하늘에 천사들이 가득히 섭니다. 찬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13) 지체 높은 동방의 박사들이 마침내 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귀한 보물을 내 놓으며 경배했습니다. 로마의 황제에게나 해야 하는 인사가 아닙니까? 성경의 어느 한 구절도 예수가 어리고 작기 때문에 약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강했고 위대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2. 우리의 삶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 인생을 삽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강해지려고 돈을 모읍니다. 권력을 쥐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심장을 막는 조그마한 핏 덩어리 하나에도 사람은 죽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기 바이러스에 한 주간을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너무도 약합니다. 한 해 내내 경제적인 어려움,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로 가슴을 졸이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한 존재입니다. 자연 앞에도 우리는 너무나 약합니다. 바람이 조금만 심하게 불어도,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우리는 우리의 평생에 이룬 모든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었습니다. 지나간 한 해 동안의 삶이었지요. 그런데 의외로 우리의 인생이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수년전 테레사 수녀가 미국의 한 교도소를 방문했습니다. 거구의 흉악범들이 작고 깡마른 수녀를 둘러쌌습니다. 한참을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녀가 자리를 떠나고 리포터들이 죄수들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녀는 강했습니다.”, “수녀님은 동정심이 참으로 컸어요.”, “수녀님은 훌륭한 분입니다.” 어떻게 그 작은 여자가 자기보다 두 배나 큰 사람들에게 크다고, 강하다고 느껴질 수 있었을까요? 그가 품은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3. 강한 인생

 

 예수님을 품은 인생은 예외 없이 강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베드로라는 예수님의 제자에 대해 제법 압니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말이 이랬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 (행 4:13) 그는 배움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의술로도 고칠 수 없었던 앉은뱅이를 고칩니다. 단 한 번의 설교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완고하고 잔인했던 유대인 오천 명을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이 일로 소동이 일어나자 대제사장이 그를 불러 법정에 세우고 심문을 합니다.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기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담대하게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권력도 학벌도 없었지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강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을 가슴에 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이라는 사람도 좀 압니다. 신약성경에서 바울보다 더 강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되고 싶었던 랍비가 되었어도 그렇게 강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신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학문에 뛰어나고 남이 부러워하는 신분을 가진 바울은 십자가에 죽어버렸습니다. 지금 그의 안에는 예수를 향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 그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사람으로 세워냅니다. 주님을 품은 자, 예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가장 강한 인생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성경은 그분의 이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3)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보좌를 비우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로 오신 날을 우리는 성탄절로 기념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너희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성탄에는 축복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기만 해서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다시 약속하십니다. 아기로 오셨습니다. 작고 여리게만 보이는 그 아기는 결코 작지도 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주님을 마음에 품은 자에게 다시금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너는 결코 작지 않다. 절대로 약하지 않다. 이 일을 위해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성탄에 담긴 주님의 약속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우리는 진흙으로 만들어지는 값싼 질그릇 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귀합니다. 그 안에 보배 되신 예수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지만 아주 망하지는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마구간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더러운 말 밥그릇이 인류 최고의 보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의 마음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작은 어려움에도 근심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확인하십시오. ‘주님. 내 구주로 내 안에 계신다. 이것이 확실한 사람 더 이상 약하지 않다.’ 이런 성도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능력 있는 인생으로 세워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믿음으로 가진 예수님 때문입니다. 이런 복된 인생으로 회복되는 축복의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hyouk@msn.com

 

12.2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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