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웨시(Sulawesi)의 남서쪽 반도에 살고 있는 47,300명의 라우제족은 토미니(Tomini)족의 한 하위종족이다. 가까운 이웃들은 고론탈로(Gorontalo)족, 부올(Buol)족, 그리고 콴당(Kwandang)족이다. 토미니족 하위집단에는 라우제족 외에 톨리톨리(Tolitoli)족, 돈도(Dondo)족, 담펠라스(Dampelas)족 등이 있다. 옛날에는 모든 토미니의 언어들 간에 서로 이해할 수 있었고, 각기 다른 언어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단지 같은 언어의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서 각 종족들이 그들 자신의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고 밝혀졌다. 많은 토미니 언어들은 아마도 16세기에 이슬람이 출현할 때까지 각각 독립 상태로 남아있던 거대한 상업 왕국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토미니의 문화적 역사는 이슬람의 출현, 독일식민지시대, 일본점령기, 그리고 독립 후의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토미니가 독일선교사들에게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슬람이 강하게 남아있다.
삶의 모습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사는 나라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에는 300여개의 다른 종족들이 모여 살며 대부분이 무슬림들이다. 이 지역의 역사 역시 작은 왕국들은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져가기도 했으며 여러 왕국들이 방어와 정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연합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원래 토라쟈(Toradja) 사람들이 살던 지역으로 보여진다.
토미니족은 전통적으로 세습되는 족장과 그를 보좌하는 의회에 의해 다스리는 각각의 부족들과 함께 술탄국의 지배를 받았다. 토미니족 사회에는 왕족, 귀족, 평민, 노예 네 계급이 존재한다. 독립 이후에 과거의 “라쟈스(rajas, 왕족)” 일부와 그 가족들은 정부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나머지 라쟈스는 상인이 됐다. 1950년대 후반에 슐라웨시(Sulawesi)의 젊은이들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대항해 분리주의 운동을 이끌었으며, 이러한 토미니 지역의 분리운동은 1960년대의 퍼메스타(Permesta) 반란으로 정점에 달했다. 그 후 수년 동안 그 지역은 물품을 전혀 만들지 못했으나 그 이래로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노력한 결과 정향나무가 농장에 성공적으로 도입됐으며, 목재회사도 시작됐다.
라우제 연안 지역은 코프라(copra)와 야자나무 농장뿐만 아니라 정향 생산물에 매우 활동적이다. 많은 라우제족 사람들이 상업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는 벌목과 어부로 살아간다. 고지대의 라우제족들은 쌀과 옥수수와 사고(sago, 야자의 한 종류)를 경작한다. 그들은 또한 라딴(야자의 일종, 줄기가 고리버들 세공, 지팡이,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됨)을 연안지역과 무역한다. 주로 연안지역을 따라 위치한 라우제족 촌락들에는 죽마 위에 세워진 작은 집들이 있다. 마을 안에서 결혼은 무슬림의 형식을 따르며 중재인이 주선한다. 이 중재인은 소녀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신부의 지참금을 협상한다. 사촌간의 결혼을 선호되며,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기도 한다. 결혼하면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신랑 혹은 신부의 가족과 함께 산다.
신앙 이슬람교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종교다. 14세기 이전에는 힌두교가 인도네시아 지역에 널리 퍼졌었는데 지금은 소수만이 믿고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약 14%가 기독교인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불교와 도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정령숭배적 종교는 외진 곳의 부족들이 믿고 있다. 라우제는 무슬림이 70%이며, 나머지는 정령숭배자들이다. 정령숭배자들은 “수쿠 테라싱(suku terasing)” 혹은 “외국인 부족”이라고 불리우며, 재배치를 포함해 정부의 행정조치의 대상이 되어왔다.
필요로 하는 것들 다른 토미니(Tomini)족들 중에서 믿는 사람들이 수백 명 있기는 하나, 라우제족 신앙인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적은 양의 기독교적 자료가 그들의 부족 언어로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