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긴족은 자신들을 다르과(Dargwa)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구소련의 자치공화국의 하나였고 지금은 러시아의 일부인 북부 코카서스에 위치한 다게스탄의 다수 종족이다. 이 지역 내에서 다르긴족은 인구의 약 15%를 차지한다. 35만명에 달하는 다르긴족은 수 세기 동안 카스피해 서부 해안의 작은 언덕, 산, 고산지대에 거주해왔다. 구소시대 동안 일부 다르긴인들은 저지대로 이주해 농업과 산업에 종사했다. 다르긴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로, 여러 세기 동안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는데, 처음에는 흉노족에 의해, 다음은 투르크족, 몽골족, 페르시아인, 19세기에는 러시아인에 의해 침략을 당했다. 사회적으로 또 식민지적 억압을 당하면서 다르긴족은 러시아 권력에 반란을 일으키고 언론 저항을 자주하는 가장 활동적인 민족들 중 하나였다.
삶의 모습
현대의 다르긴인들은 두 세대가 한 지붕 밑에서 사는 핵가족 형태로 생활한다. 일련의 가족들이 모여 “투훔(tukhum)”이라는 것을 이루는데, 이것은 공통 남자조상으로부터 나온 자손들이 모인 관련 가족의 집단이다. 투훔 안에서의 결혼이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결혼적령은 여자는 17세, 남자는 25세이다. 전통적으로 다르긴족은 생계를 위해 주로 가축사육에 의존했지만 오늘날에는 농업이 주요 수입원이다. 언덕과 산악지대에 살기 때문에 경작방법과 기술도 저지대와 고지대 등 다양하다. 저지대 농부들은 주로 밀을 생산하고 고지대 농부들은 보리, 라이, 옥수수, 콩류에 의존한다. 농사는 저지대에서는 남자가, 고지대에서는 여자가 한다. 저지대 농부들은 넓은 밭에서 금속 쟁기를 사용하지만 고지대 농부들은 좁은 밭에서 보다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한다. 다르긴인들의 주식은 곡물, 낙농품, 육류, 야채, 과일, 푸른 채소, 딸기류. 소련 통치 동안 러시아와 유럽의 요리가 더 인기가 있게 됐으며, 통조림과 상점에서 산 즉석식품의 사용이 증가됐다. 다르긴인들의 가장 발달된 공예는 양모 생산품, 금속제품, 목공예품이다. 가죽, 도기, 벽걸이 융단이 또한 중요한 생산물이다. 다르긴인들은 무기 제조에 솜씨가 있는 것으로 특히 알려져 있다.
신앙
체첸-잉구쉬 공화국과 함께 다게스탄은 구소련의 보수적인 이슬람의 가장 강한 요새 중 하나다. 18세기 이래 이슬람은 다르긴인들의 지배적인 종교가 됐다. 과거 소련 정부가 이슬람 사원(mosque)과 이슬람 학교를 폐쇄하고 종교적 출판물을 금지시켜서 종교적 신앙을 꺾으려는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고 심지어 증가하고 있다. 시골에는 무슬림 성인들의 무덤과 사당이 흩어져있어서 순례지와 기도처로서 사용된다. 다르긴족의 이슬람 관행은 매우 혼합주의적으로, 이슬람 이전 이교신앙의 중요한 유물들이 섞여 있다. 농업력(曆), 의식, 가족의 제사는 이러한 이교의 영향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현대의료서비스가 소개되기 이전에 다르긴족의 의술은 “하킴(khakim)”이라는 민간요법사가 치료하는 민간요법과 동양의술의 복합이었는데, 그에 의존해 다양한 질병들을 치료했다.
필요로 하는 것들
이슬람의 증가하는 인구와 무슬림 정치인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탓에 수천개의 이슬람 사원과 수백개의 이슬람학교가 아직도 러시아연합에 일부이기도 한 무슬림 지역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성경과 영화 “예수”가 그들의 언어로 사용될 수 없는 상태이고, 다르긴족은 실천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줄 기독교인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