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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드의 하제라이(Hadjeray)

“하제라이”란 말은 “바위 또는 산악의”란 뜻인데, 이것은 차드 중남부의 하제라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산악종족집단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주변 부족들의 침략을 피해 주변 평야에서 산악으로 피난 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하제라이족에는 켕가족(Kenga), 비디오족(Bidio), 종고르족(Jongor), 당갈리트족(Dangaleat) 등이 포함된다. 이 종족들 모두 차드어를 사용하지만 켕가족은 사라-봉고-바귀리미 언어(Sara-Bongo-Baguirimi)를 사용한다.

지리적 언어적인 유사성 외에도 하제라이 지역의 종족들은 비슷한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 통혼하기를 꺼리며 별도의 정체성 유지를 원한다. 이 종족들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 독립적이며 관계는 평화적이다. 외부세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결속하는 일이 종종 있다. 하제라이의 모든 종족이 차드 민족정부에 대항한 1960년의 반란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삶의 모습

하제라이족은 주로 농부들로 이 지역의 바위투성이 땅을 개간했다. 하지만 일부는 도시로 이주했으며, 공사장이나 정부에서 일했다. 주요 작물 수수와 다양한 과일 및 채소, 면화, 오크라, 콩, 옥수수 등도 재배한다. 주식은 야생 잎으로 만든 소스를 친 수수죽과 고기 또는 말린 생선이다. 수수 잉여분을 내다팔고 물건을 운반해줌으로써 수입을 얻는다. 주변의 아랍 부족들과 정기적 거래로 물건을 구입한다. 그들은 수공예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대부분 자신들이 사용하고 팔지는 않는다. 수공예품에는 야자수로 짠 매트, 물과 곡물을 운반 저장할 수 있는 토기 항아리, 면화 섬유다.

각 하제라이 종족은 많은 촌락으로 나뉘어진다. 대부분의 촌락에는 씨족이 여럿 있으며 그 씨족들은 서로 이웃이다. 촌락은 촌장이 다스리며 주로 마을 사람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모든 촌락에는 또한 “땅의 수장(chief of the land)”이 있는데 그가 마을의 종교적 권력을 행사한다. 대부분의 하제라이족은 시골에서 진흙벽돌에 원추형의 이엉지붕을 얹은 둥근 움막에서 산다. 소도시로 나가면 가옥이 진흙벽돌로 만들어지지만, 직사각형 모양으로 지붕이 평평하다. 촌락은 몇 개의 단지로 이루어진다. 각 단지에 많은 움막이 있어서 대가족들이 모여 산다.

하제라이 여자들은 다채롭게 프린트된 직물을 몸에 감거나 드레스로 만들어 입는다. 여자들이 단지 밖으로 나갈 때는 머리 덮개를 쓴다. 남자는 서구 스타일의 바지와 셔츠를 입거나 긴 가운을 입는다. 많은 하제라이 촌락에는 초등학교가 있지만 교사는 충분하지 않은 편이며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 외에 현대화의 물증들은 등유 랜턴과 플래시가 각 단지마다 사용되고 있다. 단파라디오와 디지털시계도 드물지는 않다. 어떤 하제라이인은 자전거나 모터 자전거도 소유하고 있다. 전기와 전화, 수도, 보건소 같은 그 밖의 현대시설은 아직 없다.

신앙

하제라이족 대다수가 이슬람으로 완전히 개종했지만 켕가족은 70%만이 무슬림이다. 이슬람 이전의 신앙이 켕가족을 포함한 모든 종족에게서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부족들은 종교에 있어서는 통일된 셈이다. 모든 종족이 “마르가이(margais)”로 알려진 제사의식에 참가한다. 마르가이는 자연의 모양을 하고 살면서 자연현상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영혼이라고 믿고 있다.

필요로 하는 것들

하제라이 지역의 부족들은 보다 많은 교육의 기회와 질적인 보건시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는 아마도 크리스천 교사와 의료사역자들이 될 것 같다. 하제라이 부족들은 또 그들의 언어로 된 기독교 자원이 필요하다. 현재 기독교라디오방송이나 문서자료와 같은 복음화 도구는 사용 가능한 것이 없다. 현재 그들 사이에서 사역하는 3개의 선교단체가 있지만 하제라이 지역에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극히 적다. 이들에게 복음이 효율적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력과 추가적인 일꾼들, 기독교방송, 복음화 문서자료들이 상당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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