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5천 이상의 인구로 네팔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구룽인들은 부탄의 남서쪽의 우거진 숲 속에서 발견됐다. 부탄은 세계에서 유일한 불교 왕국으로 히말라야인의 힘에 눌려 인도와 티벳 사이의 지역(히말라야 지역)에 끼여 살고 있다. 그곳은 또한 “Druk-Yul” 즉, 천둥 드래곤의 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룽인들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 처음에는 티벳으로부터 이주해왔고, 네팔에서 흩어져 그 후 일부는 부탄으로 옮겨온 것 같다. 영국령에 의해 지배받는 동안 인도 정부에 의해 통치됐지만 1959년 이후로는 통치가 금지됐다. 구룽인들은 부탄으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았지만 그들은 심한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다. 현재 정부는 사회에서 그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다수에 의해 하급 계층의 시민으로 대우받는다. Khas Kura라고 불리는 그들의 언어는 티베토 부르만어에 속한다.
삶의 모습
구룽인들이 흩어져 사는 지역은 경작지가 적다. 하지만 네팔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은 히말라야 지역 중앙부에서 사는 것을 금지당해왔다. 이는 구룽인과 네팔인 사이에 깊은 갈등이 되고 있다. 몇몇 구룽 그룹은 산속의 넓은 개간지에서 계속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의 농사꾼들은 나무를 베고 태워서 개간하는 방법(화전법)을 취해 생활하고 있다. 이 개간 방법은 우선 불로 산야를 태워 3, 4년 간 마른 쌀을 재배하고 그 후 다른 지역으로 옮겨 동일한 과정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구룽마을은 해발 1000-2000미터 되는 고원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공동 부락은 일반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가끔 2내지 3가구들은 그들의 경작지 근처 우거진 삼림지역에 함께 몰려있다. 그들의 집은 가늘게 짠 대나무 조각들과 짚으로 된 지붕으로 만들어진다. 전통적으로 구룽인의 남자 의상은 보토스(bhotos)라는 조끼와 도티스(dhotis), 허리에 두르는 천인데 그것으로 그들의 가슴에서 무릎까지 둘러 감는다. 일부는 자마스(jamas)-스코틀랜드식 스커트-를 입는다. 여자는 화려한 색상의 페리야(fariyas)-사리(인도여인이 허리와 어깨를 감고 남은 부분으로 머리를 싸는 길고 가벼운 옷)-와 갈렉스(ghaleks)-긴 웃옷-을 블라우스 위에 입는다. 여성들은 또한 코걸이와 귀걸이 같은 장식품을 매우 좋아한다.
축제 의식은 구룽사회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로디가(RodiGhar)”라는 곳은 젊은 층이 모여 노래하는 댄스홀의 일종이다. 구룽인들은 결혼으로 완전한 성인 자격을 부여받는다. 결혼은 일반적으로 부모들의 상호 동의에 의해 준비되며. 예비 신랑 신부는 보통 어렸을 때 약혼하고 결혼할 때는 신부들에게 금 보석 등의 예물이 주어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룽의 기초가정단위도 변화하고 있다. 가족은 남편, 아내, 아이들이 함께 사는 핵가족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들들이 결혼하면서 그들의 신부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며 가족은 확대되게 된다. 그렇지만 아들들의 자녀들이 자라매 따라 부모의 집 옆에 자신의 집을 짓고 분가한다.
신앙
구룽인들 절반은 “애니미즘”(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힌두교와 불교 두개의 종교에 의해 강한 영향도 받고 있다. 그들은 모든 병의 원인은 악마나 악한 영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고 “라마(불교사제)”는 악한 영을 내쫓기 위해 그들의 신앙서적을 읽는다. 장사 관습은 구룽인들의 점성술을 참고해 사체를 점성가에 의해 지시받은 대로 화장하거나 묻는다.
필요로 하는 것들
수질오염은 부탄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 중의 하나로 시골지역민의 70%는 깨끗한 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부탄은 1974년까지 관광사업 부문에서 개방하지 않았지만 매해 관광자수를 제한적으로 허락하고 있다. 그들은 “연약한 문화”로 불리는 군주국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여전히 위성방송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불교권 정부는 외국 종교나 서방 종교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어 중보기도는 부탄이 복음에 열리도록 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