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만의 레프차인들은 부탄의 남서쪽 울창한 밀림에서 살고 있다. 부탄은 세계 유일의 불교왕국이며 이 작은 국가는 인도와 티벳 사이의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해 있다. 또한 부탄은 “천둥용의 땅”이라는 의미의 “Druk-Yul”로 잘 알려져 있다. 부탄의 동쪽에 위치해있는 Sikkim은 레프차의 근원지이다. 그들은 농경지가 거의 없는 부탄의 남서쪽 지역의 계곡과 구릉지역에서 거주해왔다. 레프차 같은 이주민들은 히말라야지역의 중앙부로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돼있어 이 문제는 큰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비록 레프차인들은 부탄의 시민임을 보증 받고 있지만 그들은 지독한 인종차별로 고통 받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레프차는 네팔인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부탄에서 사용되는 티벳어를 사용하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레프차 언어로 말하며 대부분은 문맹이다. 삶의 모습 레프차 공동체는 깊은 계곡 속에 있다. 산지의 우거진 숲과 계곡속의 쌀 경작지는 그들의 생계에 큰 뒷받침이 되고 있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화전법(산의 나무를 베고 태워 밭을 만듦)을 이용해 경작한다. 일부는 커다란 숲 지역에서 정착해 거주하고 있다. 계곡의 공동체와 거대 가족 공동체들은 레프차의 오랜 관습을 좇아가는 유일한 문화의 한 축이다. 이러한 레프차들은 대부분 흩어져 살고 있지만 때로 그들의 경작지 근처의 우거진 숲에서 두 세 가정이 함께 모여 정착하기도 한다. 그들의 집들은 대나무 껍질을 정교하게 엮고 짚을 얹어 만들어진다. 레프차인들은 목공품이나 방적업, 방직을 전문으로 하기도 한다. 성별에 따라 노동을 구분하지 않아서 남자가 방적을 할 수도 있고 여자가 천을 짜며 또는 반대로도 가능하다. 남성과 여성은 들녘에서 나란히 일한다. 또한 부탄의 시골 주민들은 세금을 전혀 안내거나 약간 지불하지만 지역 봉사에는 임금 없이 노동력을 제공해야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레프차의 가족단위도 변화했다. 한 세대는 남편과 아내, 자녀가 함께 사는 핵가족에서 시작하곤 한다. 그 후 아들이 결혼하면 신부를 집으로 들여 가족이 확장된다. 아들의 자녀들이 자람에 따라 그는 부모의 집 근처에 자신의 집을 짓고 이사한다. 레프차인들은 신사적이고 살인이나 절도 범죄가 거의 없이 평화롭게 산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의 공격은 없어야 하고 모든 다툼은 즉각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신앙 레프차인 대부분은 그들 스스로가 불교라고 여기지만 그들은 두 개의 커다란 종교철학 즉 불교에서 유래한 ‘라마교’와 민속종교인 ‘먼(Mun)’ 종교를 좇아 행한다. 비록 모순된 점이 있어도 이 두 신앙은 동시에 믿어진다. 먼 종교는 조상신과 특별한 관계성을 가진다. 동물을 바치고 귀신과 대화하는 것은 영혼을 달래고 질병과 재앙의 원인이 되는 악귀로부터 액을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히말라야 빙하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예티”(Yeti, 무시무시한 눈사람)는 사냥꾼의 하나님으로, 모든 산악지역의 주인으로써, 모든 숲을 지은 조물주로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라마이스트들은 동물을 바치는 것은 지독한 죄악이라고 한다. 그들의 종교는 환생(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계속되는 반복)에 근거하고 있고 그들은 현재의 수고가 다음의 인생에 상이나 벌로 나타난다고 믿고 있다. 필요로 하는 것들 수질오염은 부탄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 중의 하나로 시골지역의 70%는 깨끗한 물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인구의 대부분은 전기 없이 생활하고 있다. 부탄은 1974년까지 관광을 위한 개방을 거부해왔지만 매해 방문자의 수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연약한 문화”라 불리는 군주국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위성방송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불교권 정부는 외국 종교나 서방 종교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어 강력한 중보기도는 부탄이 복음에 열리도록 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