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발루치인들은 총 8백만 발루치인 중에 110만을 차지한다. 그들의 본거지는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경계에 걸쳐져 있다. 같은 계통에 속하기는 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루치인들은 서로 구분될 수 있다. 문맹률이 높다.
발루치 사회는 씨족과 부족으로 조직돼 있다. 부족들은 대표(chief)들이 다스리는 다소 큰 단위의 집단을 이루며, 모든 계층에서 남성 연장자가 우두머리가 된다. 여러 발루치 부족들을 통합하기 위한 시도가 12세기경에 처음으로 성공했었으나 불행히 단기간으로 끝났다. 15세기경, 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전쟁들이 종족과 동맹국들 사이에서 종종 발생했다. 16세기까지 발루치인들은 세 개의 분리된 정치적 그룹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마크란 국(the Makran State)과 도다이 동맹(the Dodai Confederacy), 발루치스탄 칸국(the Khanate of Baluchistan)이 그것이다.
삶의 모습
발루치인들은 극히 거칠고 메마른 기후 속에서 삶의 장애물들을 극복해왔다. 오늘날 그들 대부분은 반유목적인 삶의 양식에 적합하도록 두 가지 형태로 정착하고 있다. 마을은 마을대표(chief)의 집 둘레에 진흙으로 만든 집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형식이다. 여름 동안 이런 산과 계곡의 정착지에서 보내다가 겨울이 되면 평야나 해변가 등으로 가축의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이동기간 동안은 천막생활을 하며 날씨의 조건에 따라 자유로이 이동한다. 이런 일시적인 정착은 가까운 친척들끼리 소규모로 구성된다.
발루치인들은 집을 만드는 기술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 이들의 경제생활은 농경과 반유목생활(semi-nomadic shepherding)이 결합된 형태이다. 주로 양, 소, 염소들을 기르며 농경은 혹독한 날씨로 인해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들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요 작물은 밀이다. 농부들은 야생 열매나 채소를 기르며 닭들도 키우곤 한다. ‘난장이 야자수’(dwart palm)라 불리는 야생 나무는 건강보조식품으로 사용된다. 야자의 육질은 식용으로 사용되고, 잎은 밧줄을 만들거나 신발, 매트, 스푼, 천막과 파이프 등을 만드는데 이용된다.
모든 가정주부는 가족을 먹여 살릴 책임이 있다. 가정에서 사용되거나 팔 목적으로 바닥깔개(rug)를 짜기도 한다. 남성들이 곡물을 심거나 쟁기질을 하고 여성들은 무리지어 수확물을 탈곡하거나 분류한다. 전통적으로 토지는 전체 부족의 소유로 되어 있다.
신앙
이슬람이 전래되기 전의 발루치인들은 주로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나 오늘날에는 수니파 무슬림들이다. 종교적인 실천은 개인에게 맡겨지며 국교화된 종교는 없다. 세속적인 권위와 종교적인 권위는 엄격히 분리돼 있다.
필요로 하는 것들
경제적 정치적 환경들의 변화는 개인적인 발루치인들을 더욱 독립적으로 발전시킴으로서 족장의 위치는 더욱 약화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족장들이 정치적 사회적 대표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 종교는 복음이 침투하기에 아주 어렵다. 두 개의 선교단체가 발루치인들을 목표로 사역했으나 너무나 미약한 성과뿐이었다. 예수 영화와 성경의 일부가 사용될 수 있지만, 아직 개종자는 없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이들의 언어로 기독교 라디오, TV 방송이 보급돼야 한다. 문맹률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기독교 사역자들은 교사의 역할을 통해 접촉점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