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와족은 자신들을 베리(Beri)라고도 부르며 중앙아프리카 전역에 흩어져서 거주하고 있다. 아울라드 마나족(Awlad Mana)을 포함한 모든 부족들이 자가와어(때로 베리어라고도 한다)를 사용하며 이 언어는 닐로-사하라 어계의 사하라 지파이다.
자가와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주로 초원평야와 깊은 골짜기가 있는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과 동서로는 사막이 에워싸고 있다. 때때로 불충분하긴 하지만 비가 내려서 토양으로 꽤 빨리 스며들기 때문에 자가와족은 많은 채소작물을 얻을 수 있으나 건조기에는 물이 부족하다. 수면병을 일으키는 체체파리가 남부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다. 자가와족은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사회나 다름없다. 오래 전 그들에게는 왕국이 있었으며 수장제도, 엄격한 사회계급, 씨족과 같은 것으로 구분됐고 이러한 고대왕국의 유물은 오늘날 아직도 남아있다.
삶의 모습
수단과 차드, 니제르가 독립한 이후 정부는 자가와 수장들의 권력을 축소시켰다. 또한 이슬람이 들어와 그들의 전통적인 씨족제를 약화시켰다. 오늘날 자가와족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부와 정치적 독립 및 민족적 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경제는 낙농, 농업, 채집 및 상업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소와 양, 낙타 등의 동물을 길러서 시장에 내다팔거나 우유를 얻는다. 나귀의 젖은 또 천식의 치료제로서 사용하며 동물의 가죽은 옷과 가죽제품을 만드는 데 쓰고 고기는 주식의 일부가 된다.
튜버(tubers, 감자와 같은 뿌리채소)와 수수는 밭에다 재배하고 양파, 토마토, 오크라(okra, 수프로 만들어먹는 채소) 같은 채소도 집 주변의 자투리땅에다 길러 먹는다. 여자들은 이런 조그마한 채소밭을 경작하며, 그 밖에 들풀이나 씨앗, 딸기류 등의 과일을 채집하기도 한다. 일부 여성들은 약 1달 정도 채집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들은 나뭇가지와 풀짚으로 엮은 움막에서 숙식하며 채집이 다 끝나면 여러 가지 곡물을 토기에 저장해 곡물창고 안에서 섞이지 않게 한다. 여자들이 채집해온 작물 외에도 자가와족은 꿀과 특정한 종류의 잎사귀, 식용 메뚜기 등을 채집한다.
많은 자가와 사람들은 거래를 하기 위해 남부와 동부로 여행하며 그들 지역에서 나지 않는 식품과 생산품을 사온다. 아카시아 세네갈에서 나는 소와 양, 야생초, 고무를 팔아 설탕과 차, 기름, 담요, 말린 대추, 비누, 아스피린 등을 구해오는 것이다.
자가와인들 중 일부는 공인이다. 철제 도구와 무기, 보석들을 만드는 일, 도기 제조, 목각공예와 악기 제조 등도 포함된다. 또 어떤 공인들은 가죽건조, 다양한 가죽제품 제조, 면화직조와 사냥도 한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주로 사냥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총기가 들어온 이후 사냥감의 양은 제한됐다. 자가와족 사회에서 공인들은 최하계층로 간주되고 있다.
대부분의 자가와 촌락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어서 기도처가 된다. “남자들의 나무”라는 곳에서 남자들이 모여 마을일들을 의논한다. 촌락 안에서는 여자애들이 곡물을 갈고 죽을 만들며, 소년들은 가축을 치거나 수확을 거두는 일을 돕는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들의 계급에 따라 정해진 생활양식을 배운다.
신앙
1600년대 대부분의 자가와족은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전통종교를 따르고 있다. 그들은 대단히 미신적이며 ‘악의적인 시선’(evil eye)과 같은 것을 강하게 믿고 있다. 이는 시기하는 사람이 집중적으로 시선을 던짐으로써 생겨나는 저주이다. 저주를 피하기 위해 아기의 얼굴을 공공장소에서는 가리고 부적을 가지고 다니며 심지어는 특정한 양식으로 가옥을 짓는다. 자가와족은 사후세계나 유령을 믿지 않는다.
필요로 하는 것들
대부분의 자가와인들이 복음의 분명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성경이 그들 언어로 번역돼야 하며 기독교방송이 그들 지역에 전파돼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그들을 위해 성실하게 중보해 영적 속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