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힐족은 크게 두부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중부 혹은 순수혈통의 브힐족이고, 다른 하나는 동부 혹은 부분적인 라지푸트 브힐족이다. 중부 브힐족은 인도 산악지대에 거주하며, 특히 마드햐 프레데쉬주와 구자르트, 그리고 라자스탄 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들은 구자르티족과 라자스타니족과 교류를 하며, 인도에서 가장 큰 부족사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인도-아리안어에서 파생된 브힐어를 사용한다.
오래전에 브힐족 왕인 라자스는 평야지대에서 언덕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락했으며, 그들만의 독립과 자주권 확보를 위해 영국과 마라트하, 모갈 등과 싸워왔다.
많은 브힐족은 사드라 사라보 댐 계획 때문에 공포심을 갖고 있다. 만약 그 댐이 건설되면 브힐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홍수로 인해 모두 수몰되기 때문이다. 현재 새로운 정착 계획이 논의되곤 하지만 아진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삶의 모습
오늘날 브힐 족은 주로 소작농과 막노동 그리고 촌락의 경비직으로 일하며 살아간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지소유가 줄어들고, 자급자족마저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브힐족은 활과 화살을 다루는 데는 전문가들이다. 실제로 브힐이란 단어의 뜻도 빌리(Billee, 활)란 단어에서 유래됐다. 오랜 세월 동안 활은 부족의 대표적 무기였다. 그리고 활은 남성들의 항상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 중 하나다. 여성들은 진한 청색이나 검은 사리(어께와 허리를 감싸는 천) 안에 브라우스를 입는다. 도시의 청년들은 머리에 천을 두르고, 귀걸이와 칼 또는 총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힌두인들과는 쉽게 구별된다.
중부 브힐 족은 수줍음이 많은 성격을 갖고 있으며, 매우 독립적이다. 또한 축제와 춤, 연극 음악 등 폭넓은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이러한 축제문화는 그만큼 많은 양의 술 소비량과 직결된다.
브힐 족들은 동일 신분끼리의 결혼을 원칙으로 한다. 만약 타 계층과 결혼을 하게 되면 하위 계층의 사람은 모든 자신의 가족들과의 관계를 뒤로 하고 상류층으로 전위된다. 이런 관습은 부족 내에서 엄격히 강요되고 있다.
각 촌락에는 모든 논쟁과 문제를 해결하는 우두머리가 있으며, 그들은 촌락인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는다. 브힐족의 가족들은 서로 유대감이 매우 강하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간의 강한 교감이 존재한다. 가족 간의 재산분배는 동등하게 아들들에게 돌아가며, 전형적인 가부장 제도를 따른다. 브힐족의 촌락은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옥들은 수수와 옥수수, 밀 보리 등이 자라는 밭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와 나무 가지를 엮어 집을 짓고 살아간다. 벌집 모양의 지붕은 보통 흙으로 만든 타일을 쓰고 있지만 가끔 볏 집과 나뭇잎으로 만들기도 한다.
신앙
대부분의 중부 브힐족은 힌두교의 강한 영향으로 인해 토속신앙을 갖고 있다. 브힐족에게는 쉬바(Shiva)가 최고 신으로 여겨지며, 조상숭배가 만연해 있다. 샤만이라고 불리우는 무당들은 많은 신과 흙으로 만든 우상들을 경배하기 위해 각종 종교의식에 부름을 받는다.
이러한 이방신앙에도 불구하고 상위 카스트인 바같(Bhagat) 힌두교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이다. 현재 중부 브힐족은 빛과 깨끗한 환생을 가져온다는 미래의 예언이 담긴 그들만의 성서를 숭배한다. 오래전 한 힌두교의 교도사가 북서지방에 대 가뭄이 들것이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했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가없이 참구원의 길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아야 하며, 그들은 북서지방에서 온 손님들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정녀에게서 난 죄 없는 성육신에 관해서 가르칠 것이며, 이와 함께 브힐족은 여러 우상들을 버리고 죄로부터 자유스러우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경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 가뭄은 그 교도사가 죽은 바로 즉시 발생했으며 1899년부터 1900년 사이에 일어났다.
필요로 하는 것들
브힐족은 바가트 브힐과 평민 브힐 그리고 낮은 신분의 기독교인 등 3분류로 나눠지는데, 보통 기독교를 받아들인 브힐족은 촌락에서 버림받게 된다.
현재 브힐족 기독교인은 1만3천여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전체 인구의 0.3%에 지나지 않는 매우 적은 수치에 불과하다.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08.2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