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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보스니아인(Bosnian)

광대한 민족적 다양성을 가진 구 유고슬라비아는 아마도 유럽의 가장 폭발적인 분쟁이 있는 지역일 것이다. 마케도니아는 유럽의 동남부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나라다. 1946년부터 1991년까지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하고 있는 6개의 공화국 중 가장 남쪽에 있었다. 1991년에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공화국이 유고슬라비아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 마케도니아도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마케도니아를 승인하지 않았다. 마케도니아는 공식적으로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공화국"이라고 부른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지역의 일부분을 요구하고 있고 마케도니아 인구의 20%가 알바니아인의 후손이므로 언젠가는 알바니아도 또한 자기들의 땅을 요구할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마케도니아의 보스니아인은 인구 4만이 못되는 소수민족이다. 마케도니아인, 세르비아인, 보스니아인은 모두 언어가 비슷한 유고슬라비아인(남슬라브인)이다. 종교가 이들의 구별된 요소가 되고 있다.

삶의 모습 마케도니아는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투르크(오토만)제국에 정복된 첫 번째 지역이고, 발칸 전쟁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자유를 얻은 나라다. 마케도니아에 영향을 준 터키의 영향력은 가는 연필 같은 탑 모양의 오토만 스타일의 성전, 격자 창문의 나무집, 전문품점이 함께 모여 있는 시장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오스만투르크의 통치기 초에 많은 보스니아 기독교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켰다. 이러한 개종이 일어나게 된 것은 무슬림은 직업을 빨리 얻을 수 있고 더 적은 세금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인은 그 도시의 전문직과 공무원의 직위를 빠르게 장악하게 됐다. 시골의 보스니아인은 곡류와 가축생산(주로 양)에 그대로 종사했다. 전통적으로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남자가 지배하는 "자드루가"(zadrugas)라 하는 농촌의 대가족을 이루어 살았다. 모든 사람은 집단 경제의 부에 이바지하며, 보스니아인의 결혼은 동족 간에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시골에서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외부인"과 결혼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다른 종족의 무슬림과 하게 된다. 일부다처제는 국법으로 금지돼 있다. 보스니아인들이 독립을 선언한 후 1992년, 세르비아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에 잔인한 내전이 시작됐다. 보스니아의 공장, 집, 학교, 이슬람 사원(mosque)의 70%가 파괴됐으며, 약 10만명의 보스니아 무슬림들이 죽거나 실종됐다고 보고됐다. 1993년, 6만 이상의 무슬림들은 난민촌에 모여 살았다. 서구쪽에서는 보스니아 무슬림들이 내전의 주요한 희생자로서 보여지며, 피난민들은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 산재해 있다.

신앙 거의 모든 보스니아인은 무슬림이다. 이슬람교는 모하메드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며, 이슬람에는 기둥이 되고 있는 5가지 교리를 기초로 한 행위의 종교이다. (1)무슬림은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으며 모하메드는 그의 예언자이다"라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2)하루에 5번 메카를 향하여 기도해야 한다. (3)넉넉하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4)이슬람력으로 9번째 달인 라마단(람잔)기간에는 금식을 해야 한다. (5)일생 동안 적어도 한번은 메카로의 순례여행을 하도록 해야 한다. 심지어 1946년 유고슬라비아에 공산정부가 세워진 후에도, 당국은 보스니아 무슬림들의 종교적 의식을 묵인했다. 또한 필수적인 국가교육정책을 따르는 동안에도 이슬람학교는 계속 개방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오늘날 마케도니아 정부는 이슬람을 알바니아 민족주의를 불붙게 하는 도구로 간주해 무슬림을 관대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필요로 하는 것들 보스니아인은 유럽에서 복음화가 가장 늦게 된 나라 중 하나다. 선교단체들이 마케도니아의 보스니아인들 가운데 현재 사역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스니아인은 복음 메시지를 강하게 거부하며 거의 응답을 하고 있지 않다. 기도가 그들에게 진리를 전해줄 수 있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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