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이족은 중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약 9백만 이상의 인구로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슬림 공동체를 형성했다. 현재 후이족의 약 10,700명 정도가 말레이시아 전역에 살고 있다. 7세기부터 14세기까지에 걸쳐 중국에 왔던 무슬림 상인, 군인들, 관료들이 후이족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무슬림들은 그 지역 중국인 한족 여성과 결혼해 정착했다. 후이족은 후에 두 차례에 걸쳐 대 이주를 하였는데 첫 번째는 17세기 중반 즈음에 이루어졌고 두 번째는 1949년 중국의 공산주의에 의한 군사혁명 시였다. 다수의 후이족은 중국과의 해상 경제활동을 연계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이주했다. 오늘날 말레이시아에 있는 중국인들은 가장 큰 무리의 이민자 집단이다. 중국인 중 다수는 불교도이고, 이 점이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어울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후이족은 말레이족과 무슬림 신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사회에 더욱 쉽게 적응했다.
삶의 모습 한때 후이족은 농부와 노동자 신분이었지만 현재는 상업과 산업, 서비스 분야에서 더 많이 일을 하고 있다. 거의 모든 후이족들이 도시 혹은 도시 주변에 살고 있으며 대부분 레스토랑, 정육점, 산업, 광업 그리고 무역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후이족의 생활은 일반적으로 모스크(이슬람사원)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말레이 법은 말레이인을 "말레이 인종에 속한 사람 곧 평소에 말레이어를 사용하고 무슬림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한다.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해도 이러한 제한을 넘어설 수 없다. 중국 무슬림의 경우에는 기원의 차이가 주장된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경제적 구조에서 중국인들이 가진 지위를 통해 또한 중국 무슬림 협회와 같은 공식적 기관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후이족을 포함한 말레이시아의 중국인들은 학교, 사회, 경제, 정치적인 조직들을 자치적으로 가지고 있다. 1995년에 말레이시아에 있는 중국계 중고등학교의 수는 60개에 이른다. 이 학교들은 교육의 매개로 영어와 만다린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인 지역사회로부터 받는 기부를 통해 학교를 유지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말레이시안 직업은 정부에 의해 생성된다. 이러한 일자리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말레이어인 바하사 말레이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후이족은 이러한 요구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후이족 사람들이 말레이어를 안다 할지라도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말레이어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후이족 사람들은 힘이 넘치고 공격적이며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며, 뛰어난 사업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다른 중국인들과는 구분되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돼지, 말, 당나귀, 노새 또는 야생 동물 고기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무슬림 관습에 따라 후이족 여성들은 후이족이 아닌 남성과 결혼할 수 없지만 후이 남성들은 여성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만 한다면 후이족인 아닌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 가계는 부계중심이며 가족들은 아버지의 혈통을 따라 구성된다.
신앙 대부분의 후이족은 수니파 무슬림(Sunni Muslim)으로 세계에서 가장 덜 급진적인 무슬림들이다. 말레이 무슬림들은 후이족들이 무슬림으로서 신앙이 부족하다고 종종 후이족에게 분개하기도 한다. 후이족은 "푸르다(Purdah, 여성의 몸과 머리를 완전히 가리는 덮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영화 "예수"와 기독교 라디오방송이 복음전파에 사용될 수 있으며, 성서도 그들의 언어로 번역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 사이에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필요로 하는 것들 종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장이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을 개종시키는 것은 불법이지만 무슬림들은 그들이 선택하는 누구든지 개종시킬 수 있다. 그래서 후이인들은 박해가 두려워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무슬림들은 말레이시아에 활동적인 선교기관이나 이슬람 연합을 상징하는 이슬람 단체인 "다크와(dakwah)"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인 무슬림 같이 탐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조직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후이족들은 그들을 결코 거부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