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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람풍(Lampungese)

람풍족은 인도네시아 주요 섬들 중의 하나인 수마트라(Sumatra) 남쪽 끝에 살고 있다. 한 때 그들은 그 섬에서 가장 큰 민족 그룹을 형성했지만, 지금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강요에 의해 지난 20년에 걸쳐 수마트라 섬으로 이주해온 3백만의 자바족이 그 수가 더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람품족은 큰 고통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람품족은 아붕(Abung), 파밍기르(Paminggir), 푸비안(Pubian),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눠진다. 아붕은 사람을 헤치고 침략의 역사를 가진 산악지방 사람들이고, 푸비안과 파밍기르는 어업과 농산물 무역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리는 저지대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람풍족은 수마트라에 사는 또 다른 인도네시아 부족인 코메링(Komering)족과 같은 언어 그룹에 속하지만 같은 전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관계를 맺으며 지내지는 않는다.

삶의 모습

전형적인 람풍 마을에는 막대기와 죽마 위에 지어진 고상식 가옥들이 있다. 이러한 가옥들은 "세사트(Sesat)"라고 불리는 마을 회관 건물을 중심으로 주위에 세워진다. 세사트는 일반적으로 방이 하나인 집인데, 다양한 집단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이 큰 방 하나를 작은 방으로 나누어 놓았다. 마을위원회는 이 세사트에서 모임을 갖는다.

람풍족의 영토는 다섯 지역으로 나눠지는데 각 지역은 더 작은 구역으로 나눠지며 각 구역들은 남성 대표에 의해 다스려진다. 각 구역의 이름은 그곳에 사는 가족의 이름에 따라 붙여진다. 람풍족 문화는 여성에게도 지위가 있다. 귀족계급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춤추는 동안 그들이 아름답고 우아한 옷을 입기 때문이다.

많은 람풍족 사람들이 어부로서 생계를 유지하며, 일부는 생산된 농산물을 큰 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활하며, 어떤 이들은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최근 자바족의 이주로 인해 많은 농사꾼들이 멀리 북쪽으로 밀려나게 됐으며, 이로 인해 일부는 농사를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심지로 옮기기도 하였다.

매력적인 람품족 문화 중 하나는 가족과 가문을 나타내는 표시로 천으로 된 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깃발에는 배나 사당의 모양, 사람과 동물 형상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러한 훌륭한 예술 작품들은 결혼이나 제사의식, 위기 때 걸려 있게 된다.

람풍족이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도네시아어가 공식어로 채택돼 수마트라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신앙

무슬림과 수마트라섬 사람들의 교역을 통해 이슬람교가 13세기 말 수마트라로 유입됐다. 이슬람의 영향은 서서히 람품족의 문화를 약화시켰고, 지역 대표는 마침내 그들의 지위와 힘을 잃게 됐다. 19세기까지 람풍족은 네덜란드 식민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았다.

현재 람풍족은 헌신적인 정통 무슬림들이다. 이것은 이슬람 신앙이 정령숭배와 혼합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여러 남부 수마트라 부족들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필요로 하는 것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주정책을 강제적으로 실행해 많은 람풍족 사람들이 학대 받는다고 느끼게 됐고 이에 분개하게 됐다. 이러한 고통으로 새로 이주해온 자바인들과 갈등과 대치 상태에 놓이게 됐고 충돌이 일어나게 됐다. 슬프게도 람풍족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주된 사람들은 자바인 기독교인들이다. 인도네시아어가 매우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람풍어로 출판되는 일반 및 기독교 자료는 거의 없다.

람풍족은 새로운 사상에 관대하게 열려있는 종족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 일하고자 하는 여러 외부의 시도들이 많은 저항에 부딪쳤다. 이러한 저항을 일으키는 요소 중의 하나는 이슬람에 대한 애착이다. 현재 람풍족 사이에서 사는 크리스천은 타 지역 사람들(주로 자바인)이 상당수 있다. 불행하게도 람풍족 사람들은 자바인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 알려진 람풍족 크리스천은 단지 50명쯤이다. 비록 람풍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아직 보급될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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