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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리프인(Riffian)

리프인은 실하(Shilha)로도 알려진 훨씬 더 큰 베르베르 종족에 속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이다. 실하 베르베르족은 북부(리프) 베르베르, 남부(수시) 베르베르, 중부(베라베르) 베르베르의 3개 집단으로 나눠어진다. 리프 베르베르족은 19개의 독립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라비아말로 "리프"(rif)는 '경작지의 가장자리'를 뜻하며 이는 리프인들의 거주영역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모로코와 알제리에 걸친 리프 산맥의 거친 경사에 거주하는 리프인들은 사막과 산악지대, 완만한 기복의 평야지대에서 생활한다. 아프리카인은 이 지역을 통틀어 "마그리브"(Maghrib)라 부른다. 3세기에 로마인들이 마그리브 지역민들을 야만인이라는 뜻의 베르베르로 명명했다. 서기 670년에서 700년 사이에는 무슬림들이 마그리브 종족을 점령했다. 최근 들어 많은 북아프리카인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했으며, 1980년대 초에는 다수 리프인들을 포함 50만 이상의 노동자들이 그곳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로는 유럽 노동시장이 신규 노동자들에게 폐쇄된 상태다.

삶의 모습 북아프리카의 리프인들은 산비탈을 덮고 있는 무화과나무와 올리브나무로 생계를 유지한다. 부족한 수입은 유럽 대도시에서의 취업을 통해서 보충되며, 남자의 1/3이상이 대도시에서 일한다. 실직한 리프인들은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었지만 이민 제한 규정들로 인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그러한 선택권은 계속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많은 이민자들은 프랑스의 리프인 공동체를 떠났고, 어떤 사람들에겐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병역 복무와 프랑스 공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이민의 한 수단이 됏다. 전쟁이 끝나면서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에 남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프랑스에 노동력이 부족하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랑스로 왔다. 최근에는 프랑스가 북아프리카에게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 중 하나가 되고 있기 때문에, 상인으로서 온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의 이민자 수가 증가하면서, 주택과 실업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인종차별이 생겼다. 초기 이민자들은 싸구려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공사나 거리청소, 광산, 힘든 철강조립 등과 같은 저소득 일터에서 근무했다. 1974년, 경기가 나빠지자 프랑스인들도 이런 일들을 하게 되고 정부는 이민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리프인들은 서너 세대가 조그만 방 하나에서 모든 것을 공용하며 함께 생활한다. 아버지가 가장이 되며 가계는 남성을 통해 전승된다. 가정구조는 다소 권위적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모든 가정문제들을 책임지지만, 나머지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가정에서 쫓겨나는 것은 가장 끔직한 처벌로 간주된다.

신앙 리프인들은 종교행위가 전통과 코란보다는 공동체의 결정에 근거하고 있지만, 거의 전부가 무슬림이다. 리프인 사회는 이슬람교와 부족이라는 2개의 주요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도시 지역에서는 정통 이슬람교의 세력이 크며 시골에서는 고대신앙과 풍습들이 여전히 이슬람교 신앙과 혼합돼있다.

필요로 하는 것들 많은 리프인들이 이슬람근본주의를 넘어서는 해답을 찾고 있다. 알제리와 모로코에 있는 리프인들은 기독교를 따를 수 있는 자유는 없지만 프랑스의 리프인들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실제로 최근에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프랑스에서 기독교 프로그램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여전히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접하고 있지 못하다.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리프인들은 경제적 측면에서 밑바닥에 있으며 인종적 편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리프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관용을 보여줄 수 있는 기독교인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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