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상에 누웠습니다. 이렇게 누워 있노라니 전과 달리 나의 시야와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한적이고 근시안적이며 구태의연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동안 살아왔던 여정을 뒤돌아보게 하고 지금 나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까지도 생각하게 합니다. 병상을 찾는 사랑하는 많은 지인과 친구들 그리고 교우들이 잠시 쉬라는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위로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20여일을 척추가 부러져 병상에 누워있는 것은 쉼이 아닌 고역입니다. 우리말 가운데 다리 몽둥이를 끊어놓겠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된 구습을 끊고 못된 버릇을 고쳐 바르게 하여 옆에 두어 내 사람으로 쓰겠다고 하는 사랑의 표증입니다. 금번에 저는 다리몽둥이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허리몽둥이를 끊어 놓으셨습니다. 나의 구태의연한 구습을 고쳐 당신 옆에 두어 당신의 도구로 더 쓰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생각하니 이 아픈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며 그분의 사랑에 그저 감격할 뿐입니다. 병상에 누워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하며 내 이웃과 형제들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삶의 모습들도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아픔과 염려까지도 함께 나누며 위해 기도하는 여유도 갖게 되었습니다.
뼈아픈 고통이란 것을 경험하고 보니 언젠가 읽었던 헨델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런던의 앨버트 홀에서는 해마다 성 금요일이 되면 헨델의 ‘메시야’가 전통적으로 공연된다고 합니다. 헨델이 작곡한 메시야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고 특히 ‘할렐루야’합창을 들을 때에는 음악에 조예가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예의를 갖추는 전례가 있습니다. 이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메시야곡이 초연되었을 때 할렐루야 합창이 불리어지자 그 곡을 듣던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 곡을 듣는 모든 청중들은 일어나 예를 표하는 관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유명한 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처절한 밑바닥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격은 헨델의 인생 역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헨델은 40여 년 동안 영국과 유럽에서 명성을 떨쳐왔습니다. 그가 새로운 곡을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에게 갈채를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질투하는 경쟁자들은 그의 오페라 공연장에 싸움패를 보내어 공연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곤 했습니다. 극장에서는 더 이상 그의 작품을 공연하려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뇌출혈로 오른 쪽 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는 처참한 모습으로 한 시골 마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741년 어느 겨울 산책을 하다가 한 교회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처절한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저에게 소생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었다가 또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버리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창작생활을 계속할 기회를 주시지 않나이까?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는 오열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는 밤이 으슥해서야 초라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책상 위에 소포꾸러미가 놓여있었습니다. 내용물은 성담곡(聖譚曲)의 가사였습니다. “시인 찰스 제넨스로부터”라는 서명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어서 불쾌한 심정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주께로부터 말씀이 있었다”고 쓰여있는 것을 보니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읽어 내려갔을 때 이상하게 가슴을 찌르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그 내용은 “그는 사람에게 멸시와 버림을 당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도다...... 그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도다.....” 마치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구절들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도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음부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할렐루야, 전능의 주님 다스리시네.”
그 순간 헨델은 온몸을 스치는 전율에 몸이 떨렸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잇달아 샘솟았습니다. 그는 펜을 들고 그로부터 24일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무섭게 일에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메시야가 완성되었고 그의 명예와 찬사가 회복되었습니다.
만약 그에게 고통이 없었다면 역사적인 메시야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깨달은 자신의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뜻이 역사에 기리 남을 명곡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만난 하나님 환한 미소로 위로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