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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의 계명

여승훈 목사 (시카고 가나안교회)

첫째 계명이 무엇이냐는 어느 유대인 서기관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첫째 계명(하나님사랑)과 둘째 계명(이웃사랑)을 동시에 대답하셨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작은 자에게 한 것을 주님 자신에게 한 것으로 동일시하는 말씀이다. 즉 첫째 되는 하나님 사랑과 둘째 되는 이웃 사랑을 하나로 묶어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오해는 이것을 첫째와 둘째로 분리하는데 있다. 하나님 사랑 따로 있고 이웃 사랑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생활 따로 하고 사회생활 따로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에 대한 오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십계명의 계명은 보지만 계명 속에 흐르는 spirit은 잘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십계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 된다. 1-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을 5-10계명까지는 이웃 사랑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열가지 계명을 지나고 있는 하나의 spirit이 있다. 그것이 출애굽기 20장 2절에 나온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무슨 말인가? 애굽에서 구출 하여낸 사건을 상기 시킨다. 일종의 구원 사건을 상기 시킨다. 즉 죄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십계명 전체에 흐르고 있는 spirit이 되는 셈이다.

죄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라 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젖어들지 않으면 이중적 신앙인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것이다.

미끄러져 실패할 때마다 이중성을 발견할 때마다 언제든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 앞에 다시 서야 한다. 그 길이 유일한 길이다. 출애굽기 20장 3절 제 1계명을 말씀하시기 전에 2절에서 구속의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복음의 소리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 복음의 소리가 열 가지 계명 전체를 컨트롤 하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중심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언제나 그분을 보아야 하고 그분을 말하여야 하고 그분을 초점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가 윤리와 도덕 정도를 실천하는 종교생활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현대 기독교가 쇠퇴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중의 하나다. 그리스도 예수로 충만하면 성경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실제로 그리고 영으로 맛보아 알게 된다. 이것이 예수 믿는 비밀이요 즐거움이요 기쁨이다. 이 맛을 보지 못하고 종교생활 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초청하셨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종교 생활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참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다. 바로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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