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음식도 빠르게 먹고 걸음도 빠른 저에게 ‘기다림’은 보편적으로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우체국이나 비행기 탑승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그나마 끝이 보이니 어떻게 견디겠는데 병원에서 기다리는 일은 특별히 어렵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예약자 칸에 이름과 예약시간을 적은 후부터는 차례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때로는 대기실에 비치된 신문이나 매거진(magazine)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는데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코끝에 닿는 것을 느끼고 째깍째깍대는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 목사체면에 겉으로는 점잖고 교양있게 웃지만 속으로는 “기다리다 지쳐서 병나겠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하고 시계를 보며 한숨짓습니다.
누구에게나 기다림이 힘든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초조함과 조급함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 민족은 이 방면에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 이런 성향이 더 심하지만 이곳 미국인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빨리빨리”를 외칠 때 미국인들은 “컴온, 컴온”(Come on, come on)을 외칩니다. 우리가 3분 컵라면을 기다리지 못할 때 미국인들은 30초 인스턴트 밥(Minute Rice)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마이크로웨이브에 커피를 데우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물건 10개만 통과할 수 있는 마켓 익스프레스 레인(express lane)에서 11개의 물건을 통과하는 사람을 보면 흥분하며, 또한 한국 총알택시기사 못지않게 초스피드로 운전하는 난폭한 운전자들도 있습니다. “컴온, 컴온” 외치는 미국인과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 민족의 조급증은 종종 그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초조함과 조급함이 기다림의 적이라면 설렘과 기대감은 기다림의 친구입니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는 어렵지만 기다림에 이유가 있고 상급(reward)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 기다림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과 더 좋은 것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성품을 배우게 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 속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600명의 네 살짜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그들에게 준 하나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15분을 기다리면 또 한 개의 마시멜로를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14년 후에 어떻게 성장했는지 점검해보니 또 하나의 마시멜로를 상으로 얻기 위해 인내했던 3분의 2정도의 아이들은 나머지 아이들보다 더욱 성공하고 인정받는 청소년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마시멜로가 설렘과 기대감으로 ‘기다림’을 가능하게 했고, 이 기다림을 통하여, 목적성취를 위해서 현재의 유혹을 이기고 인내하는 것을 배운 아이들은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설렘과 기대감도 기다림의 절대적인 해법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목적이 바뀌고 상황이 변하여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게 되어도 ‘기다림’이 가능할까요? 오히려 설렘과 기대감이 초조함과 조급함으로 바뀌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기다림’은 원망과 쓴 뿌리로 바뀝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다림의 동기가 우리의 지식에 근거한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신뢰’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요셉이 그 어떤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감옥에서도 24개월, 104주, 730일, 그리고 17,520시간을 원망이나 불평으로 낭비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그때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에 21일 동안 적극적으로 기도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고 고향과 친척을 떠나는 믿음의 결단을 하였고 그 결과로 100세에 약속하신 아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삶 가운데 때론 희망에 부풀었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질 수도 있고, 납득이 가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연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다림은 상황에 근거한 설레임이나 기대감, 혹은 초조함이나 조급함이 아니라 영원에서 영원까지 불변하시고 우리를 독생자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다림이 승리가 되는 기쁨을 맛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