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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便)함과 불편(不便)

이재근 목사 (주사랑선교교회 담임)

문명의 이기(利器)인 첨단과학의 발달로 우리는 참으로 편한 세상을 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발달로 컴퓨터,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IT제품으로 실시간으로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무엇이든 알아볼 수 있고, 무료로 카톡(KakaoTalk)을 통해 전세계 어디든 누구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멀티미디어인 교제네트워크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 Social Network Site), 즉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제적 관계망이나 교제적 관계를 구축해주고 보여주는 온라인 서비스 또는 플랫폼을 말함인데, 마이스페이스(Myspace),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링크드인(Linkedln) 등을 통해 이용자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신상(성별, 연령, 직업)과 취향, 이데올로기, 종교 등의 의견과 정보를 전체 또는 선택적으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 제도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유비쿼터스 네트워킹’의 줄임말로, 라틴어의 ‘언제 어디서나 있는’을 뜻하는 말로서,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모든 물리공간(도로, 다리, 터널, 빌딩 등)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를 넣어 모든 사물과 대상이 지능화되고, 전자공간에 연결돼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집, 회사, 사업장, 어디든 실시간 현장을 확인할 수 있고, 전기, 가스 등을 원격조종할 수도 있는 기막히게 편리한 시스템이다.

이는 공상과학소설(SF:Science Fiction)이 아니라 실제상황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다. 꿈같은 현실이다.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될까?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의 삶은 편함의 극치, 현대판 바벨탑 가운데 살고 있지만 신앙적, 영적인 삶은 어떨까요? 앞서간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편함보다 고난과 핍박, 즉 불편함 가운데서 살았음을 보게 된다. 야곱은 20년간 외삼촌의 집에서 수고와 고난의 불편함 가운데 살았고, 요셉은 13년간의 노예 살이와 감옥살이의 불편함 가운데 살았고,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광야생활의 불편함 가운데 살았고, 바울은 3년간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편함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개인지도를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보좌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모진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최악의 불편함 가운데 사셨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무사안일과 만사형통의 편함 가운데 살아가는데,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편함과 축복은커녕 핍박, 고난, 조롱, 업신여김의 불편함 가운데 살고 있다면 말이 되지 않는 크나큰 모순이다. 그러나 고난과 핍박의 불편함 가운데 야곱은 축복의 조상이 되었고, 요셉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모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고, 바울은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고,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사탄 마귀는 2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한다. 첫째는 너무 바쁘게 하므로, 바빠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하고, 둘째는 너무 편하게 하여 게으름과 나태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말세에 세상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편함이 좋다고 졸며, 게으르고, 나태할 때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잠6:10-11, 마24:43, 벧후3:10). 지금은 마땅히 자다가 깰 때며 기도하고,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준비할 때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고 했고, “환난이 너희의 영광이라”(엡3:13)고 했다. 세상적 육체적 편함은 죽음과 멸망,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하지만 영적 고난과 불편은 축복과 구원과 천국의 영생복락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잠시 잠간의 편함에 유혹되지 말고 힘든 고난과 불편을 잘 참고 인내하며 극복하므로 영원한 안식의 참된 편함을 누리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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