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목사 (시카고 가나안장로교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다양한 사건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허덕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갑작스런 질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회사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자동차엔진이 갑자기 고장 나기도 하고, 거의 성사된 것으로 알았던 계약이 파기되기도 하고, 전혀 뜻밖의 오해를 받아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업이 부도가 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인과응보의 원리를 생각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인과응보란 선과 악의 행위에 따라 결과가 찾아온다는 이론이다.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 찾아 왔을 때 그 원인이 이전에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혐오하고 저주하기까지 한다. 입에서는 온갖 쓴뿌리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끊임없이 why me?라고 따져댄다. 점점 거칠어가고 결국에는 스스로 지쳐버리게 된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극심한 고난을 겪은 사람은 아마 사도 바울일 것이다. 고난 가운데 처한 사도 바울의 특징은 슬픔 대신에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고후7:4). 환난은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따라 나오는 감정의 표현은 틀림없이 슬픔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슬픔이 아닌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만의 비밀이다. 그 비밀을 여는 코드는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필자는 한 달전 휴스턴에서 시카고로 이사 와서 살고 있다. 지난주일 오후에는 이삿짐이 휴스턴에서 한달 만에 들어왔다. 한달 동안 에어베드에서 잠을 자다가 어제는 침대에서 잤는데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천정을 응시하며 편안한 기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면서 찬송가 한 소절이 떠올랐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 거친 들 같은 환난이 찾아와도 하늘나라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 주 예수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란다. 즉 예수 침대위에 누워서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곧 그리스도인들이다. 예수 침대위에서 누리는 그 기쁨이 얼마나 특별한지 아는가? 현재 만나는 고난의 정도가 아무리 극심하다 할지라도 결코 슬픔의 감정에 침몰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예수 침대 위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그분을 더욱더 즐거워하고 그분을 더욱더 신뢰하므로 넉넉하게 견뎌내게 할 것이다.
당신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당신의 능력이나 자질을 주목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근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바라보고 주목하는 것이다. 혹 당신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을 의존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얼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자리를 이동하라. 그리고 당신에게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그분의 처분에 온전히 맡겨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