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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열심

여승훈 목사 (휴스턴 사랑의교회)

약 9년 전에 멕시코 어느 산골지역에 단기 선교를 다녀온 적이 있다. 필자는 그때 일어났던 한 가지 일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멕시코 형제 한분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었는데 이발기구(바리깡)가 더 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정기적으로 기름을 쳐주고 손질을 보아놓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은 그 형제분의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 이발기구를 빼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 형제분은 결국 머리를 쥐어뜯기는 고문(?)으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계 상태는 점검하지 않고 단순히 머리를 깎아주겠다는 열심만 앞세웠던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열심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오래전 필자를 지도해주셨던 목사님께서 항상 들려주셨던 말씀이 있다. “목회는 열심히 해야돼, 최선을 다하여 해야돼” 필자도 그분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열심과 최선은 필자가 지금까지 목회사역 가운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위험한 함정이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래전부터 가까이 알고 지내는 어떤 권사님이 새로 부임하여 1년 정도 지난 담임목사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 목사님은 열심이 있으세요. 열심이 있으셔서 교회가 금방 부흥 성장할 것 같아요”. 그런데 3년차에 목회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사임을 하고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나중에 간접적으로 그 목사님의 고백을 듣게 되었는데 그분의 고백내용은 자신의 열심이 오히려 목회사역에 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열심의 문제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본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0장 2절에서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열심은 있었는데 지식을 좇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지식은 성경의 진리 되시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지식을 말한다. 열심이 있었으나 그 열심이 오히려 복음지식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결국 열심 자체를 의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일이다. 자신의 열심을 의존하는 마음이 복음지식을 쉽게 간과해 버리게 된 것이다.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려던 예수님께서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향해 격하게 화를 내셨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떠올려졌던 주의 말씀이 있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2:17). 성전을 향한 유대인들의 열심이 오히려 주의 이름에 손상을 입히는 아픈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은 그들의 열심에 핵심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월절 절기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죽음의 심판에서 구해낸 “어린양의 피”였다. 그 어린양의 피의 실체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전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어린양의 피를 기리는 유월절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은총을 기억했어야 했고 또한 어린양의 피를 기리면서 앞으로 다가올 실체(완성)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빠뜨린 채 유월절 절기 자체에 대한 열심만으로 행했던 것이 결국 주의 이름에 손상을 입히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가장 큰 실수는 자신들의 진지한 열심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신뢰해야 하는 것은 당신의 진지한 열심이 결코 아니다. 만약 당신 자신의 진지한 열심을 신뢰하고 주의 일을 한다면 틀림없이 당신 자신에 대해서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진지한 열심을 신뢰 하게 되면 언제나 진지한 열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진지한 열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간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가로막고 하나님의 이름에 손상을 입히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진지한 열심을 배격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진지한 열심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진지한 열심이 당신이 신뢰해야할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당신이 신뢰해야할 대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지식이다. 기독교는 눈에 보기 좋은 미덕을 핵심으로 전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핵심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지식을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진지한 열심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계신다. 당신 자신의 진지함에서 시작되는 그 열심을 내려놓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매달리므로 거기서 나오는 거룩한 열심을 갈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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