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용 목사 (유니온교회 담임)
중국 기 나라에 “만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근심에 잠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하는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나이가 근심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찾아가서 타일렀습니다. “여보게 하늘은 공기가 쌓여 이뤄진 것으로 공기가 없는 곳이란 없네. 우리가 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것도 하늘 속에서 하는 일이니 무너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네.” “하늘이 정말 공기로 쌓여 된 것이라면 해나 달, 별 같은 것들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해와 달과 별도 역시 쌓인 공기 속에서 빛나기 때문에 떨어진다고 해도 사람이 다칠 염려는 없네.” “그럼 땅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죠.” “땅이란 흙이 쌓여서 이뤄진 것일 뿐이야. 사방은 어디에나 흙으로 꽉 차 있어. 아무리 뛰어도 우리는 언제나 흙 위에 있잖은가. 그러니 땅이 꺼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네.” 이상은 ‘쓸데없는 근심’을 뜻하는 ‘기우’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대화 내용이 좀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현대인에게 교훈을 던져 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고날까봐 운전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교통사고 현장이나 매스컴에 보도되는 사고 장면을 보면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고는 운전을 안 해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길을 걷고 있는데 차가 달려와서 사고를 낼 수도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사고를 당한 이들은 기관사가 운전하는 전동차 속에서 변을 당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일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런 것 때문에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일은 염려한다고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염려하지 않는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로 염려하지 않는 것이 삶에 유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