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지난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로 3명이 죽고 약 300여 명이 다쳤습니다. 29살의 식당 매니저였던 크리스티 캠벨(Krystle Campbell), 중국에서 보스턴 대학으로 유학온 린지 루(Lingzi Lu), 그리고 마라톤에 참가한 아버지를 응원하러 나온 8살 난 마틴 리차드(Martin Richards)가 사망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켄터키 주에 사는 천진난만한 2살짜리 여동생이 5살 난 오빠가 쏜 총에 맞아 죽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에 6개월째 억류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 씨(Kenneth Bae)는 북한의 굶고 허기진 어린이들을 위하여 외부에 도움을 호소하려고 사진을 찍은 죄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질문합니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가? 왜 때로는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다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우리가 받는 고통은 우리가 선택한 불순종 때문입니다(갈6:7-8).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은 원래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의지적으로 불순종을 선택했기에 그는 고통과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오늘날을 사는 우리도 스스로 선택한 죄와 다른 사람이 선택한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은 악한 세력 때문입니다. 마귀는 쉬지 않고 우는 사자와 같이 믿는 자를 삼키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어둡게 하고(고후4:4), 거짓으로 유혹하고(행5:3), 남을 고소하고 비난하게 만듭니다(12:10). 도적인 사탄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함입니다(요10:10).
그럼, 왜 사랑의 하나님이 악과 고통을 허락하시는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짓지 못하도록 하시면 이런 고통이 있을까요?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할 능력을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할 능력이 없으면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참사랑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서로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선택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제공자가 아닙니다. 그분은 악한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으셨으며 도덕적인 책임도 없으십니다. 모든 인간의 고통은 인간의 죄의 결과이고 그 뒤에 존재하는 악한 사탄의 역사입니다. 물론 때로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허용하십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징계이고 우리를 성숙하게 하기 위함이며 고통을 당하는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요?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8:7).
“주님,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저들에게 소망이 되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