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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다 용서합니다

문병용 목사 (유니온교회 담임)

1982년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9세 여자 어린이를 유괴해서 폭행한 뒤 물에 빠뜨려 죽게 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당시 35세의 찰스 페인이란 사람을 범인으로 체포했습니다. 경찰은 희생자의 양말과 속옷에서 나온 머리카락이 페인의 것과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84년 페인은 유괴 및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페인씨는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계속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페인씨가 선고받은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유전자 감식법이 개발되지 않아서 단순히 현미경으로 머리카락을 관찰했습니다. 현미경을 통해서 관찰한 결과 문제의 머리카락이 페인씨의 것과 유사하다는 검찰 측의 주장이 법정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져 페인씨는 사형을 선고받았던 것입니다.

이후 유전자 감식방법이 개발되었지만 머리카락에는 없는 핵을 대상으로 감식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머리카락의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유전자를 감식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이 방법으로 문제의 머리카락을 조사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법원이 조사한 결과 희생자의 양말과 속옷에서 나온 머리카락은 페인씨의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01년 8월 23일 아이다호 주 지방법원은 페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페인씨는 17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발달된 과학 덕분에 늦게라도 누명을 벗고 풀려나긴 했지만 17년간 억울하게 감옥에서 지내야했던 페인씨의 삶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고통 속에 지낸 17년간의 옥살이에 대해 너무나도 담담했습니다. 석방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페인씨는 “사법체계를 원망하는 일은 이미 오래 전에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앞으로 다섯 걸음, 뒤로 다섯 걸음을 걸어 보이며 “이것이 내가 17년 동안 감방에서 수천만 번 반복했던 일”이라며 “이제 계속 걸어 나가 아름다운 아이다호의 계곡들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라며 기뻐했습니다.

페인씨는 쉽게 할 수 없는 결심을 했습니다. 고통 속에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17년의 황금 같은 세월을 누가 보상해줄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도 불공평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게 피해를 준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페인씨는 참으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만약 페인씨가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법기관을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심과 적개심에 불탔다면 그는 남은 삶마저 비참하게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용서함으로 마음에 평안과 여유와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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