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 목사 (나성세계로교회 담임)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당시 철옹성과 같았던 교권주의자들에 맞서서 개혁을 이루어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거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담보로 하면서 뛰어들었던 일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서 열정과 헌신을 다해서 임했던 트랜스포머(Transformer)들이 있었기에 종교개혁이 빛을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으로 눈을 돌려 보더라도 이러한 트랜스포머를 통해서 역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위크 잡지에서 현대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열 명의 트랜스포머를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그 명단에는 폴란드의 바웬사를 비롯 남아공의 만델라 그리고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당시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많은 핍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협박과 암살의 표적이 되는 위험에도 자신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헌신을 하되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가운데 약자들의 편에 서서 싸우는 용기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수많은 핍박과 환난 중에도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주보 때문에 큰 홍역을 치른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주보의 양식과 내용을 좀 바꿔보려다가 큰 반대에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보를 고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보를 만드는 것이 오랫동안 내려온 교회의 전통이기 때문에 전통을 깰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개혁을 필요로 하는 교회가 이처럼 개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권이나 교리 전통과 구습의 틀에 묶여서 한발작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트랜스포머인 주님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더 이상 종교개혁을 골동품으로 만들지 말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위대한 트랜스포머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