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덕 목사 (미주양곡교회)
가을이 되면 누구나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사색하는 사색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을은 우리들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가을의 정점에 서게 되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나온 세간들에 대한 회고적 생각과 오늘에 대한 조용한 해석,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들을 정리하게 됩니다.
특별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에 가슴에 강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 되게 하는 사람>이란 명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되기를 소망합니다.
잘 되기를 소망하는 강력도가 클수록 잘 되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물론 잘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강도가 낮을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민자로 혹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잘 됨>에 대한 소망의 강도가 많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잘 되고자 하여도 잘 되는 현실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마음에 생각 하는 만큼 그리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잘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 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고 고백한 것 같습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게 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요한이란 분을 생각하면 큰 도전을 받고 목회의 철학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잘 되게 하는 목회를 해야지’라는 각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되게 해드리는 사역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가을의 정점에서 문득 <잘 되게 하는 사람>이란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잘되게 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은 물론 이웃이나 가족이나 심지어 교인들이 교회를 잘 되게 하는 일에 서툴러서 문제를 일으키고 잘못되게 역할을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음을 봅니다. 어쩌면 잘 되게 하는 사람들 보다 잘못되게 훼방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많은 현실입니다.
정치하는 분들의 행태를 보면 서로 잘못되게 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아픈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분명 한 것은 남을 못되게 하는 것은 결코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풍성한 축복의 계절, 가을에 다시 한번 <잘 되게 하는 사람>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잘 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잘 됨에 대한 개척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하는 그 일들을 잘 되게 하려는 강력한 에너지를 발휘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잘 되게 하는 능력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잘 되게 하는 교인은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 직장을 잘 되게 하는 직장인은 결코 외면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정과 가족을 잘 되게 하는 식구들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 하는 여러분! 잘 되게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잘 되게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을 주변 사람들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잘 되게 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지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실제적으로 잘 되게 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존귀한 자리에 오르게 되며 언제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으며 성공의 가도를 달려가는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이때에 우리 모두 <잘 되게 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더 잘 되게 하려 할 때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지금 보다 훨씬 더 잘 되게 축복 하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 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 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요삼서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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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