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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생인가 수강생인가?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미국에 유학 와서 신학교를 처음 다닐 때, 내가 신청한 수업 외에 다른 여러 수업을 청강할 수 있었다. 당시 한 과목을 수강하는데 대략 3000불이 넘는 수업료를 내야 했는데, 한 과목을 청강하는 데에는 50불이면 충분하니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꼭 듣고는 싶었지만, 내가 계획한 공부의 방향과 관련이 없는 강의를 청강하기로 하고, 단돈 50불을 내고 그 수업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인기가 좋은 강의에 매우 많은 청강생들이 몰려들었다.

강의 첫 시간, 수업을 시작하면서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청강한 학생들은 모두 수강 신청한 학생들과 똑같이 독서과제를 하시고, 토론에 참여하시고, 마지막 소논문까지 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청강생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첫 수업시간이 끝나자 매우 많은 청강생들이 가방을 싸서 우루루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필자 역시 그들과 함께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강의를 듣고는 싶었지만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강의에 참여할 마음은 없었던 이유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강생이 아니라 청강생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말씀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막상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은 그리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동의는 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희생과 헌신, 고생을 동반하는 것이니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달콤한 말씀, 재미있는 말씀을 듣는 데에만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듣기만 하면서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녁 시간이 되면 ‘내려와서 밥 먹어라’ 하고 아이들을 식탁으로 부른다. 그러면 ‘네’ 하고 답은 하지만 식탁까지 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식탁에서 기다리는 엄마가 묻는다. ‘내려오라는 말 안들었니?” 그러면 아이가 대답한다. ‘네 들었어요.’ 아이는 엄마의 말을 귀로는 들었지만, 실천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고 여기지만, 엄마는 아이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여긴다.

들음은 행함을 전제로 한다. 들었으면 그 들은 대로 행동해야 그 들음이 완성된다.

신명기 28장 2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며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하고 가르친다. 여기에서 ‘청종’은 ‘듣다’와 ‘따르다’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은 말씀을 많이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따르는 데에 있다.

이제 2023년도 1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올 한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는가 하는 것보다도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따라갔는가 하고 돌아보자. 그리고, 청강생같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수강생 그리스도인으로, 듣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청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자.

wmclakim@gmail.com

12.0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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