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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를 시작하며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여름이 막바지가 되어가면서 학교마다 새학기를 시작한다. 우리 두 딸들도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사무용품 매장에 함께 갔다. 필요한 것들을 마음껏 사라고 이야기했더니, 두 딸의 행동이 엇갈린다. 한 아이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알려준 물건들을 모두 다 카트에 집어넣는다.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카트를 채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다른 아이는 필요한 것이 있음에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학교에서는 스프링 노트가 다섯 권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세 권이면 충분하겠지’하고 세 권만 산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기어이 두 권을 더 집어서 카트에 넣어준다. 나는 마음 편하게 필요한 것을 다 사라고 이야기했건만, 이 아이는 목사 아빠의 주머니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스스로 씀씀이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 안쓰럽다.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당연하게도 한 딸아이의 것이 다른 아이의 것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면 이 두 딸 중에 누가 내 눈에 더 예뻤을까? 당연히 둘 다 똑같이 예쁘다. 카트를 가득가득 채운 딸아이는 아빠를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 그 마음이 너무나 예쁘고, 하나를 사더라도 고민고민하는 딸 아이는 아빠의 사정을 이해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이쁘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내 딸이라는 이유로 그냥 예쁘다. 공부를 잘해서 예쁘고, 건강해서 예쁘고, 착해서 예쁘고, 어른들 말씀 잘 들어서 예쁜 것이 아니다. 그냥 내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쁘다.

이 세상의 수많은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마켓에서 사은품을 주는 것은 고객이 단지 고마워서가 아니라, 사은품을 받으면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사게 만들기 위함이다. 회사에서 성과급을 주는 것도 단지 수고를 격려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더 열심히 일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짜다. 우리가 그저 아들딸이니까 사랑하시니까 말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사랑은 공짜일까? 너무 싸니까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그 값을 도저히 지불할 수 없을 만큼 비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공짜로 주시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이유이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걸맞는 당당한 모습만으로도 기뻐하지 않으실까? 내가 내 딸의 행동이나 모습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기뻐하시니 말이다.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초막절에 성전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바로 ‘누구든지’이다. 예수님은 조건을 따지지 않으신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신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으로 가기만 하면 목마르지 않도록 생수를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란다. 

wmclakim@gmail.com

09.0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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