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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장로님”

지용덕 목사

지용덕 목사 (미주양곡교회)

저는 이상하게도 목회를 하면서 좋은 장로님들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부족하여도 너그럽고 이해성이 많으며 물심양면으로 분에 넘치는 사랑과 도움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저희 교회 장로님들은 저에게 든든한 후원자들이 되어 주십니다.

흔히 목사는 두 가지 복을 받아야 하는 데 하나는 좋은 아내를 만나는 복이요 다른 하나는 좋은 장로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들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이 두 가지 복을 다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특별히 사랑하고 그립고 존경하는 장로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며칠 전 팔십 팔세의 연세로 천국으로 가신 여자 장로님이 그분입니다. 너무 귀하고 소중하고 충성된 분이셔서 교회장으로 천국 환송예배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장로님의 영정으로 사용할 사진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분은 거제도가 고향이신 고 원종옥 장로님 이십니다. 일찍 최씨 가문의 훌륭한 분과 결혼하시고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 오신 분입니다. 그 긴 세월 변함없이 사십 여년을 충성되게 교회를 섬겨 오신 신실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이십니다.

저는 이 서신을 쓰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는 복된 만남의 축복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만남과 헤어짐은 행복과 사랑의 추억과 아쉬움의 여운이 남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만남과 헤어짐은 마음의 상처와 불행과 고통과 쓴 뿌리의 뒷맛을 경험하게도 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지금 만남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그 만남을 경시하여 그 만남을 불행하게 만들어가는 어리석음의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철이 든 지혜자들은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서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만남을 잘 가꾸어 가기도 합니다.

둘째는 한 사람의 중요성입니다. 흔히 교회로 모이면 한사람 한사람으로 보지 아니하고 전체의 모임의 수효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로 몇 명이나 모이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사람을 전체의 수효로 보지 아니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은혜로운 찬송 중에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믿는 자 한사람 한 사람” 이란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주님은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크고 섬세한 사랑의 주님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가 보면 자칫 실수하기도 합니다. 교인 한 분 한 분의 소중함을 모르고 교회 공동체 전체에 마음의 비중을 둘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교인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하와이로 이주하신 젊은 집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하와이 가서 추첨을 하는데 이백 대 일로 콘도가 당첨이 되어서 이사하기 전에 기도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어린 목사 초년병일 때는 그런 전화를 사무적으로 받고 마무리하였을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의 중요성을 알게 된 지금은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얘기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게 주신 목자의 마음임을 이제야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기적의 중요성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을 바라는 이들이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는 종교입니다. 종교를 넘어 신앙이요 생명이 실재입니다. 목회는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목회자는 소위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자기의식과 주변의 기대 심리가 작용하는 부담스러운 위치입니다. 또 소명 의식이 없는 목회자는 목회자가 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강한 소명 의식은 책임감과 사명감이 강한 목회자들에게는 큰 괴로움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모든 것에 만능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우들 중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 처한 이들이 있을 때, 저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나약한 목자의 능력에 좌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적의 은총을 기도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을 만나 함께 하는 목회자들은 기적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포기하지 말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능력을 행사하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재발견하고 그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와 우리의 소중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너에게 보이리라” (렘 33:3)

cyd777@hotmail.com

08.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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