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보배로운교회)
아브라함과 욥의 인생이야기를 접하면서 깊은 고뇌와 묵상을 거듭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자 욥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하였던 지난날의 강단 메시지를 떠올리면서 회중들은 굉장한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아주 신앙이 좋다고 평가받던 어떤 교우분이 개인적인 어려움을 당하면서 무척 괴로워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접하는 순간에 평상시에 그토록 좋아보이던 믿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연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욥의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열 명의 자녀들을 모두 다 잃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찾아온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어떻게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왜 나를? why me?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거친 말을 쏟아내지 않겠습니까? 아니 욥이 받았던 고난의 100분의 1정도의 고난만 찾아와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변을 원망하는 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다 잃는 엄청난 고난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 하니라”(욥1:20-22). 요약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신앙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녀 다 잃어버린 상태에서 하나님을 여전히 예배한다 찬송한다 과연 가능한 것입니까? 저는 누가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을까를 놓고 아는 사람들을 다 기억하며 헤아려 보았는데 저를 비롯하여 가능한 사람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욥의 고백을 대할 때마다 욥처럼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해야지라고 교훈을 받습니다. 그런데 실제 어려운 상황이 들이닥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가 싶을 정도로 형편없이 연약해지고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욥의 신앙을 본받자 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만을 전한다면 설교자로서 굉장히 무책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상황 앞에서는 교훈적인 메시지들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욥과 같은 특별한 사람만 그런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일반 사람들은 아예 올라가지 못할 나무와 같은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모두는 욥과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욥기서 1장 1절에 보면 욥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관점에서 종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계시하시고 계시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발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하시고 사람은 계시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것이 종교에 대한 기본정의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욥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계시해주셨다는 것을 전제 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보십시오. “믿음의 때가 오기 전에는 우리가 죄의 포로가 되어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되어지기 전까지는 마치 감옥 안에 있는 것처럼 갇혀 있었다 즉 믿음을 가질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을 보충해주는 말씀 한절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10:3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믿는 믿음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자,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 주어지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사람마다 수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수준은 예수가 삶의 전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예수가 삶의 한 부분 정도만 차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누구나 다 예수를 삶의 전부로 삼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욥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수준인 예수를 삶의 전부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무엇인가를 크게 활동을 해서 그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록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그 말씀 속에서 예수가 누구시며 예수가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를 발견하고 발견된 그 예수를 날마다 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체험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또한 깊어지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로 당신의 마음이 송두리 채 사로잡히게 되고 예수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할 때 비로소 예수가 삶의 전부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가 삶의 전부가 될 때 우리를 지배하는 예수의 영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도록 하는 믿음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고난은 절대 우리의 신앙경력이나 교회직분이나 악착같은 인내력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기록된 주 예수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을 영으로 체험하는데서 나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선포하고 나갑시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삶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