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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인생을 만든다

박성규 목사

주님세운교회

 

프랑스의 작가 알버트 까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상금으로 10만불을 받았습니다. 그는 파리 근교에 호화 별장을 사고 고급 승용차를 사서 그 별장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에 살았던 알버트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상금으로 13만불을 받았습니다. 그는 파리까지 3등 열차를 타고 가서 이 상금을 전액을 아프리카 나환자 병원을 짓는데 바쳤습니다. 

알버트 까뮤와 알버트 슈바이처는 소원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까뮤는 육의 소원을 가졌고, 슈바이처는 영의 소원을 가졌던 것입니다. 까뮤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슈바이처의 뒤를 따르고자 수많은 의사들이 아프리카 나환자 병원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대한 소원이 위대한 인물을 만들게 되고, 그의 소원을 모두 함께 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0-24에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소원이 나타납니다. 첫째,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일생을 살면서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바로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는 진실한 삶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이름을 남기는 삶! 세상에서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되는 삶이 아니라, 바울은 언제나 “내 인생이 끝나는 날 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의식을 하며 그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려고 몸부림 쳤다는 것입니다. 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멕시코에 가면 나코자리라는 작은 탄광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르시아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기관사가 정거장에 열차를 세우고 기관차 안에서 쉬면서 성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가르시아가 기관차 안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뒤에 달린 화차 하나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불길은 이미 다이너마이트가 실린 화차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이 열차에 가득히 실린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 이 작은 나코자리란 마을과 그 안의 모든 주민이 몰사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서 피하라고 소리치며 뛰고 있었으나 그것은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이 때 가르시아 기관사는 기관차의 손잡이를 잡고 열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속력을 얻은 열차는 마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계속 불길을 끌고 달려갔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숨가쁘게 달리는 기차의 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뒤흔드는 큰 폭음과 함께 열차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물론 기관사 가르시아의 몸도 형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르시아란 이름은 나코자리 마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살아서 기억되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가르시아. 자신을 희생하여 한 마을을 건진 가르시아! 그는 바로 그런 위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양심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 교회에 이 땅을 책임지라고 운전대를 맡겨준 것입니다. 모든 일에 언제나 양심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거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을 살기를 소원했습니다(빌1:20-21).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은 사울(큰 자)에서 바울(작은 자)로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세상 영광을 위해 살았고 자신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 원했습니다. 모든 관심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길 소원했습니다.

셋째, 바울의 소원은 교회를 세우는 삶이었습니다(빌1:22-24). 사도 바울은 삶과 죽음 이 두 사이에서 만약 택하라면 죽음을 택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죽음의 문을 열면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이 거기 계시고 천국의 영광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이 땅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주님의 피값으로 주고 산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그 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은 우리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한 삶으로, 나 중심의 삶에서 예수 중심의 삶으로,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삶으로, 나 중심의 삶에서 주님의 피 값으로 주고 사실 교회 중심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이런 영광스런 소원을 이루어 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ongkpak@hotmail.com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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