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아나한인교회)
역설이란 말은 서로 모순적인 것 같지만 그 속에 심오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역설의 진리가 많이 담겨있고, 예수님께서 설파하신 행복론에는 역설의 진리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즐겁고 웃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님은 슬퍼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님은 핍박받고 고통당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실까? 사실 사람의 눈에는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복이 아닌 것이 많다. 사람들은 물질이 많으면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물질이 많아서 불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많다. 한 부자 집의 아들은 아버지가 사준 비싼 스포츠카를 친구들과 함께 타고 스피드를 즐기다가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가 자동차를 사줄 정도로 부자가 아니었으면 그 아들은 장성하여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한국 소설문학 중에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란 소설이 있다. 여주인공은 벙어리에 지능도 낮다. 그 여인은 할 줄 아는 말이 ‘아다다’ 밖에 없었다. 아다다는 장성하여서 한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둘은 서로 아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돈도 상당히 모았다. 돈이 많아지자, 남편은 벙어리 아다다를 두고 한 신식 여자를 집으로 데려온다. 아다다는 그 돈 때문에 남편의 마음이 변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다다는 집에 있는 모든 돈을 들고 나가서 강물에 뿌려버렸다. 사실 이 비슷한 내용이 사람들의 실제의 삶에 너무 많이 일어난다.
또, 그와 반대되는 일도 많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든다는 통계가 있다. 어릴 때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고 시련과 눈물을 경험한 사람들이 입지적인 사람으로 역사에 남는 사람들이 많다.
다윗은 어릴 때 가족으로부터 무시당했고, 젊어서는 사울 왕으로부터 온갖 시련을 겪으며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는 살아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강구하였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그런 시련을 통해서 겸손을 배웠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위대한 성군이 되었다.
사람은 가난을 통해서 성실을 배우고 슬픔을 통해서 삶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아픔을 통해서 인격이 성숙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은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된다. 사람은 시련을 통과하면서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고, 하나님의 참된 축복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가난한 마음, 슬픈 마음, 괴로움 가득한 삶이 행복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참된 행복은 눈앞에 보이는 어떤 중간 결과물이 아니라 먼 훗날 뒤에 닥쳐오는 마지막 결과물까지 보시면서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의 생각과 다르고 역설적인 경우가 많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고, 큰 자는 섬기는 자라고 하셨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셨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때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슬프고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시련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믿을 때 어떤 순간에도 의연하고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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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