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보배로운교회)
성경을 100독하였다고 말씀하시는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가운데 깜짝 놀랐었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100독하였다는 말씀에 잔뜩 기대를 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약 50여분 동안 말씀을 전하시는 동안에 신구약의 여러 스토리들이 전하여졌고 감명 깊은 교훈적 메시지도 전하여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어떤 메시지 하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끝내 제가 기다리던 메시지는 전하여지지 않고 그분께서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제가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지는 수준 높은 학문적 메시지도 아니었고 우리의 감성을 터치하는 수필 같은 감상적인 메시지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다렸던 메시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를 일관되게 계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구속사”라고 부릅니다. 구속이라는 말의 한자어는 ‘구할 구(救)’ ‘살 속(贖)’이라는 뜻으로 값을 주고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는 ‘아폴뤼트로시스’(άπολύτρωσις)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의미는 ‘노예 한사람을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지불하는 돈’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노예 되었던 인류를 해방(구원)시키기 위하여 외아들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흘리신 피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며 성경 전체가 그 해결책을 중점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해결책의 키는 창세기 3장 15절에 계시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성경 전체를 일관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구속사(A History of the Works of Redemption)”라고 부릅니다.
구속사는 단편소설 같이 토막토막 다른 주제의 적용적 메시지를 전하는 성격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 안에는 역사이야기와 인물이야기와 다양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모든 내용들이 따로 따로 각각의 독립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속의 모든 내용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중점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성경본문을 꼼꼼히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습니다. 성경본문을 꼼꼼히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으로 말씀선포가 계속 진행이 된다면 회중들에게서 교회생활과 계명을 지키려는 열심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가슴에 불이 붙는 감격은 찾아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생활에 점점 지쳐가는 회중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가슴에 불이 붙어야 교회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동력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데 그 불이 붙지 않으니 점점 지쳐만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슴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설교자도 가슴에 불이 붙어야 하고 회중도 가슴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슴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가 필요합니다. 그 불쏘시개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이 전하여질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여지면 동시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 가슴에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는 한 수레바퀴처럼 돌아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곳에는 성령이 역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에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그 불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감격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이 붙은 예배가 드려지고 불이 붙은 찬양이 드려지고 불이 붙은 전도가 이루어지고 불이 붙은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불이 붙는 감격과 감동은 탁월한 설교가로부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이 불이 붙는 감격과 감동은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만약 은혜가 임하였다면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위로가 되었다면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어야 합니다.
이제는 신학적 머리 지식으로만 아는 구속사가 아닌 우리의 가슴을 통과하는 체험되어진 신앙고백 차원의 구속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신학적 머리 지식으로 구속사를 논하는 것과 가슴을 통과하는 체험되어진 신앙고백 차원의 구속사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슴을 통과하는 체험되어진 신앙고백 차원의 구속사가 전하여지면 비로소 영혼들을 살려낼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영혼들을 살려내는 일은 그분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니까요… 그분으로만….. 그분으로만….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선포하며 나갑시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삶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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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