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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세상, 살 만한 세상”

강인국 목사

(미시아나한인교회)

조지 플로이드라는 남성은 자신을 과도하게 제압하는 경찰을 향하여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소리치며 죽었다. 그의 외침은 각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외침이 되었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숨을 죽이고 지내야 했던 시절이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탄압으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우리의 선배 세대들, 한국전쟁 전후에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마루아래 같은 곳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서 숨죽이며 지내야 했던 사람들, 그 후에도 무서운 독재정권의 공권력 앞에서 숨죽여야 했던 세대들, 상하관계의 엄격함 속에서 온갖 언어와 신체적 폭력을 온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직장과 조직에서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숨이 턱턱 막힌다. 

한국에서 아파트 경비로 일하는 고 최희석 씨는 아파트 입주민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모욕과 폭력을 당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호소하였다. 한국의 철인경기의 유망주인 고 최숙현 소녀는 지도부의 언어와 신체적 폭력으로 스스로 자신의 호흡을 끊으며 이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 막히게 만드는 사람들과 상황 때문에 목숨을 끊었던가?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가진 작은 권력으로 약자의 목을 짓누르고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믿음의 선진들도 숨을 쉬지 못할 정도의 극한 시련들을 직면하고 괴로워했다. 욥은 폭풍같이 몰아닥친 일련의 시련들로 숨을 쉬지 못하겠다고 토로하였고(욥9:18), 다윗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다고 두려워하였다(시17:12). 사자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 실로 숨이 턱 막힌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 숨 막히는 상황들을 어떻게 이겨 내었는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숨)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숨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숨이 사라졌다. 사람이 숨은 쉬지만 그 속에 참된 숨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문제에 봉착할 때에 쉽게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당한다. 

주님은 억눌림과 숨 막히는 상황 속에 놓은 사람들을 자유케 해주기 원하신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시며 각종 억눌림, 현대적 용어로는 스트레스에 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을 튀어주기 원하신다. 그 주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말씀하셨다. 두려움으로 숨죽이고 살아가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저들의 숨을 트이게 해주셨다. 

영감(inspiration)은 숨을 들이 마시다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숨을 들여 마실 때 막혔던 숨이 터지고 생명이 소생한다. 성도는 그런 주님으로 인하여 숨을 쉬는 사람들이고, 또한 숨 쉬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숨통을 터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죄악과 미움과 갈등이 가득한 이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고, 서로의 격려와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서로를 통해서 더욱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dik0184@yahoo.com

07.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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