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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자유는 어디로 갔는가?

강인국 목사

(미시아나한인교회)

사람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자유들 중에 신체활동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갔던 동네 가게나 식당에 갈 수 없고, 직장에 갈 수 없고 수많은 개인의 사업장들도 문을 닫았다. 가족과 친구들이 같이 모여서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없고 따뜻한 이 봄 날씨에 여행도 가지 못하고 예배당에 같이 모여서 함께 예배도 드릴 수 없다. 독재국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이 강력한 자유의 통제가 현 시대에 자유가 매우 잘 보장된 이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자유를 통제하는 이 강력한 힘은 어이없게도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부터 나왔다. 비눗물로 씻으면 힘없이 죽어버리는 바이러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바이러스로 인하여 그렇게 풍성했던 우리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고 차단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의 마음에 자유의지를 심어주셨다. 그래서 사람은 나면서부터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생명까지 바치며 투쟁해왔다. 미국의 정치가 패트릭 헨리는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명연설을 하였다. 이 말보다 자유의 의미를 더 강력하게 표현할 말이 있을까?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의 의미는 실로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고귀하다. 자유란 가치의 존엄성은 사람의 생명의 가치보다도 귀중하다. 그래서 인류는 자유와 더 온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피 흘리기까지 투쟁해왔다.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면서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 첫째, 그동안 우리는 주어진 자유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했다. 현대인들은 자유가 주는 풍족함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주어진 자유를 인식하지도 못했고 감사하지도 못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메모리얼공원 분수대에 새겨져있는 말이다. 실로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젊은이들과 인권운동가들이 피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죽으셨다(롬8:2).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고귀한 자유의 가치를 성도는 마음깊이 인식하며 감사하며 그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둘째, 그동안 우리는 주어진 자유로 스스로 왕이 되어서 즐기고 방종하였다. 현대인들은 주어진 자유와 권리로서 스스로 주인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자신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살아왔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5:13)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과 욕망의 주인이 되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행하지만, 성도는 스스로 낮아져서 종이 되어서 주님을 섬기고 타인을 섬기는 성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 그동안 우리는 주어진 자유로서 죄악을 선택하고 행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주어진 자유로서 음행,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술 취함과 방탕 등(갈5:19-21)의 길을 선택하고 행한다. 그래서 이 세상은 온통 죄악과 쾌락과 이기심과 다툼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성도는 주어진 자유로서 사랑,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온유, 절제 등(갈5:22, 23) 의 삶을 선택하여서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로서 성도의 본질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우리는 풍성했던 자유를 빼앗기고 각자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 주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2)고 말씀하셨다. 넘치던 풍성했던 자유가 이토록 철저히 차단되고 통제된 때에 성도가 먼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가면 진리 되신 주님께서 이 무서운 재난을 물리쳐 주시고 빼앗긴 자유를 회복시켜주실 것이다.

dik0184@yahoo.com

 

05.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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