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아나한인교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기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순간 자지러지게 울며 또한, 눈을 맞추는 사람마다 두려운 눈망울로 쳐다본다.
오래 전에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 그 텔레비전에서는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고 남녀 주인공의 대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들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매우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그 영화의 제목이 무엇인지 검색하여서 그 영화를 다시 감상하였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들의 대화가 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은 <프랭키와 쟈니>였다. 여 주인공 프랭키는 허름한 식당의 웨이츄레스로서 하루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쟈니라는 남자가 그 식당에 요리사로 취직해 들어왔다. 통속 영화의 흐름대로, 그들은 몇 번의 만남을 통해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 쟈니는 프랭키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랬더니 프랭키는 말한다. 자신은 과거에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로부터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여서 아기를 유산하였고 그로 인하여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프랭키는 그 이후로 남자를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 남자가 허리띠로 자신을 후려쳐서 생긴 머리의 흉터를 보여주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 때 쟈니는 그 가련한 여인의 머리에 새겨진 흉터에 키스해주며 말한다. “이젠 다 치유되었어요.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아요. 내가 옆에 있어 줄게요.” 그러자 여 주인공 프랭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두려워요. 혼자되는 것이 두렵고 혼자되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워요. 현재의 내 모습이 두렵고 원래의 내가 아닌 것이 두려워요.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두렵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워요. 이 직장을 잃을까 싶어서 두려워요, 그런데 또한 이 직장에 평생 동안 묶여있을 것 같아서 두려워요, 정말 피곤해요, 두려워하는 것이 이젠 너무나 피곤해요”(필자는 이 장면을 캡쳐하여서 YouTube 채널에 올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HO75gxYOKDA). 그 당시, 나는 프랭키가 주절대던 그 두려움을 나의 내면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컥 공감의 눈물을 쏟고 말았던 것이다. 그 두려움은 우리 모두의 두려움이 아닐까?
나는 과연 문학을 꿈꾸며 피 흘리기까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했던 그 옛날의 나일까? 나는 내가 젊었을 때 흉보던 그 고집스럽던 구세대로 변한 것은 아닐까? 젊을 때 탐욕과 부패를 향하여 분노하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의 덩어리로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과연 가슴에 품고 있던 그 꿈을 조금이라도 이룰 수 있을까? 만약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이대로 인생이 끝나면 어떡하지? 가슴조리며 갖게 된 이 직장에서 해고되지는 않을까? 그런데, 미래 없는 곳에서 발버둥 대다가 내 모든 것을 다 소진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두들 승승장구하는데 혹시 나만 뒤쳐져 버리지는 않을까? 혹시 무서운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지는 않을까? 혹시 끔찍한 사고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을까? 혹시 친구나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등을 돌리지는 않을까? 혹시 나 혼자 외롭게 홀로 쓸쓸하게 죽게 되지는 않을까? 사람은 끊임없이 삶과 인간관계, 미래, 불행, 질병, 그리고 죽음 등에 대하여 불안해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이 원초적 두려움은 어디서 왔을까?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숨었다(창3:10).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로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왔던 것이다. 사람은 안전 자체이신 하나님을 떠났기에,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두려움을 가슴에 품고 살게 되었다. 하지만 두려움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미래를 준비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영생을 갈망하게 되며, 죄와 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하나님을 찾고 믿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은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임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으로부터 강력한 훈련을 받은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두려워하며 숨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 중에 오셔서 평강을 주셨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요20:19-22). 그 후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전사가 되었다. 그들은 숨어있던 장소에서 튀어나와서 죽음도 불사하며 담대하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였다.
나는 어린 십대에 두려움에 갇혀서 살았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등, 나는 지독한 겁쟁이였다. 하지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어둡고 긴 두려움의 동굴에서 벗어 나와서 밝은 태양 아래에 서 있음을 느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니 온 세상이 나를 위해서 창조된 것 같았다. 태양이 나에게 미소 짓는 것 같았고, 나무들이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것 같았으며, 선선한 바람이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그 여인처럼 지독한 두려움, 마음에 검은 트라우마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두려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08.2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