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목사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최종적인 방향은 하나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 역사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구원 역사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베풀어진다는것은 모든 구원 역사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두고 우리를 구원하는 것인가?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신분적 정체성과 그리고 그런 정체성을 가진 목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일종의 원인과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것이 원인이라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사는 삶은 결과에 해당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과정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을 비교해 볼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과정은 100% 하나님의 은혜와 0%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서신을 받고 있는 에베소 교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므로써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이미 지옥 형벌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에 이미 들어가게 된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에베소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와 어떻게 교회를 섬겨가야 할지에 대하여 설명해 가고 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말씀이 가진 구조 자체가 원인 결과의 성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정체성에 걸맞게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덕은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탁월 하심은 하나님의 속성(성품)과 하나님이 행하신 구속의 일을 가리킨다. 즉 진정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일상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행하신 구속의 은혜가 어떠한 것인가를 삶으로 증명해내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삶은 언제나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됨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 맺는법이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 맺는법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 즉 나무의 상태는 열매를 맺게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떤 나무가 좋은 나무이며 어떤 나무가 나쁜 나무인가? 하나님이 보시는 좋은 나무에 속한 사람과 나쁜 나무에 속한 사람의 구분은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Relationship)가 어떠한가에 따라 판단 하신다. 그리스도가 누구심을 분명히 고백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혜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대하여 분명한 고백적 소망이 있고 그리스도가 하늘에 승천 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영원을 사모 하며 걸어갈수 있도록 다스리고 계심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있을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가 바른 관계(right relationship)에 놓여 있다고 판단 하신다. 이렇게 그리스도께 대한 분명한 고백적 믿음을 가질때 윤리적 삶을 살아내는 능력이 부어지는 것이다. 현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리와 윤리적 삶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깊고 깊은 고민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것을 본다. 그래서 윤리 실천적인 부분에 대한 강조가 지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한가지 사실을 꼭 되새겨 보자. 우리가 과거의 죄의 형벌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능력이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인가? 2000년전에 일어났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찾아온다. 그것은 곧 복음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복음의 능력의 영향은 어느 범위가지 미치게 되는 것인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의 삶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복음의 감격에 의한 능력이 없이는 결코 윤리적 삶을 살지 못한다. 지옥 형벌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구원의 과정에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하나님 100% 인간 0%)이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이후에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것은 하나님과 구원 받은 백성간의 협력 사역이다. 여기서 협력 사역이라함은 하나님 50% 인간 50%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100%와 인간 노력 100%를 말한다. 현대 기독교가 고민하고 있는 윤리적 삶의 실천 부족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 부족을 우선적으로 꼽는다면 계속적인 실패를 거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근본적인 원인은 에베소 교회가 예수님으로 부터 지적 받았던것처럼 첫사랑의 감격을 놓쳤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사랑이 어떤 것인가? 요한일서 3장 16절을 보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는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것을 가리킨다. 바로 그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던 첫 사랑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첫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감격이 곧 능력이 되고 그 능력이 구원받은 백성들로 하여금 윤리적 삶을 실천하게 하는 결정적인 동기 부여 입니다. 그러므로 빈약하리만치 부족한 윤리적 실천의 약함을 보면서 우리의 결심이나 마음의 중심이나 노력을 점검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목하고 나를 사랑 하사 나를 위하여 외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의 온도가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만큼 윤리적 삶도 실천 될 것이다. 그래서 오직 복음 오직 예수를 외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