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목사
건물을 지어 올릴 때 처음 기초석으로 놓는 돌을 모퉁이돌이라 하고 건물을 거의 다 지었을 때 맨 마지막에 올려놓는 돌을 머릿돌이라고 한다. 모퉁이돌과 머릿돌은 건물의 기초요 건물의 완성을 상징한다. 건물을 완공하는데 있어서 이 두 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건축하는 사람들이 분별력이 없어서 가장 중요한 모퉁이돌과 머릿돌을 버렸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행태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적 표현이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은 기초와 완성을 상징하는 모퉁이돌과 머릿돌이 되신다. 그런데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마치 건축자들이 분별력 없이 모퉁이돌과 머릿돌을 버리듯이 예수님을 거부하므로 내팽개쳐 버렸다. 하나님 나라 건설은 모퉁이돌과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지어져간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 간다.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가고,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가고, 커뮤니티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가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으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개인이든 가정이든 커뮤니티든 교회든 그 어디든 하나님 나라가 왕성하게 세워져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정치인들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너도 나도 비상한 전략들을 제시하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 전략들을 잘 집행해서 행복한 나라를 세워보겠다고 말한다. 시대 시대마다 발표되는 정치인들의 이런 전략적인 아이디어는 지나온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사람들에게 이미 많은 실망감을 안겨다 주었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세상 정치인들의 전략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나님의 방식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순발력 있게 제시하는 비상한 전략에 있지 않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있다. 찬양곡 가운데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 라는 가사가 담긴 찬양이 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예배가 예배다워질 수 있는가? 성경이 제시하는 대답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들일 때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져 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들일 때 예배가 더욱 예배다워져 갈 것이다. 교회가 교회다워져 가고 예배가 예배다워져 가면 그곳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예배가 예배답지 못하는지 아는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밀어내고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주도적으로 다스려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현대 교회사를 통해서 발견하는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주도적으로 다스려 가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개인도 공동체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로 들어가서 종 된 심정으로 겸손히 섬겨 나가면 개인도 공동체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세워 나갈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말이 조금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말을 좀 더 실제적으로 표현을 하면 옛 기질이 날마다 죽는 것을 뜻한다. 옛 기질이 죽을 때 비로소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옛 기질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옛 기질이 죽는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날마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면 성령께서 친히 도우실 것이다. 그래서 옛 기질을 죽이는 시간에는 분명히 고통이 따르지만 반면에 내면의 행복과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