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온전한 십일조

여승훈 목사

오래전 필자가 사역하던 교회에 최경주 선수가 약 3년간 교인으로 출석하였던 적이 있다. 시즌 경기가 모두 끝나는 12월이 되면 교회 남선교회에서 최경주 골프 강습 시간을 가졌었다. 필자는 골프를 전혀 쳐 보지 않아서 골프 전문 용어를 잘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용어가 있다. “그립 잡는 법”이다. 최경주 선수가 가장 강조하던 용어였다. 그립 잡는 법은 골프의 기초이면서 PGA 챔피언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였다.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에도 적용이 된다.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기초적 원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 몇주 전에 어떤 장로님이 말라기서의 십일조 말씀에 대하여 필자에게 질문을 하였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필자가 그 장로님에게 나누었던 내용을 나누어 보겠다.

말라기서에 나타난 십일조에 대한 책망은 표면적으로는 수입의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망인 것 같지만 포괄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불경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지 않는 태도에 대한 책망이다. 수입의 십일조를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으로 보았겠지만 더욱 큰 도둑질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였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신앙에서 파생되어 나온 열매가 온전한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라기 3장 9절에 보면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수입의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와 관습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의 소리다. 말라기 3장 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한다.

온전한 십일조는 문자 그대로 수입의 온전한 십일조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수입의 온전한 십일조 이전에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는 관계를 요구 하신다. 즉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열매로 수입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에 대한 해석도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복의 개념에서 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복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므로 공급받게 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함을 가리킨다. 10절에서 말하는 “양식”도 결국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진리의 말씀으로 연결해야 한다. 시험해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정말 물질적 축복을 주는지 아니 주는지 시험해보라는 그런 취지로만 해석을 하면 온전한 해석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온전히 경배하고 온전히 사랑하므로 온전한 수입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 땅의 물질세계에서 얻는 복이다. 두 번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복이다. 이 영원한 복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이 곤란하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 자신이 곧 궁극적 복의 핵심이 된다. 이 땅에서 얻는 물질적 축복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 하면서 수입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 할지라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고난의 과정을 지나게 하면서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인격을 다듬어서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쪽에서는 성품의 열매 없이 물질의 복을 누리는 것보다는 물질이 빈곤한 과정을 통해서라도 성품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빈곤한 과정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요구에 잘 순응하여서 성품의 열매를 맺는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물질로도 복을 주실 수 있으실 것이다. 이렇게 이 땅에서 누리는 물질의 복은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복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어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원래 받고 싶은 온전한 십일조는 눈에 보이는 물질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들 자신이다. 원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 하는 헌물인데 대신하여 표면적으로 수입의 십일조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원하신다. 그런데 사람은 죄로 인하여 그렇지 못하다. 사람 스스로는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죄 있는 사람을 대신하여 드려진 제물이 그리스도 예수다. 그러므로 수입의 십일조를 드릴 때는 먼저 그리스도 예수로 충만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로 충만히 채워진 자기 자신과 함께 그 표징으로 수입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진짜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로 가득 찬 성도들로 성전이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을 시험해보라는 말씀은 정말 그러한지 아니한지 테스트 해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되게 하실 것에 대한 확신과 신뢰를 가지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말 그런지 아니 그런지 실험해보라는 의미는 충분한 해석이 될 수가 없다. 그런 해석들이 지난날 한국교회에 기복신앙을 낳게 한 원인중의 하나가 되어 오지 않았는가? 정말 그리스도 예수로 충만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고 온전히 사랑한다면 바로 그것 자체가 곧 복이 되는 것이다.

Leave Comments